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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一有聰明睿智盡其性者 出於其間이면 則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하여 使之治而敎之하여 以復其性케하시니 伏羲神農黃帝堯舜 所以繼天立極이요 而司徒之職 典樂之官 所由設也 <大學章句, 大學章句序>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제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백성의 군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시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이 천명을 계승하여 〈교육의〉 표준을 세운 까닭이요, 사도의 관직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이유였다.
2 子夏曰 賢賢호되 易色하며 事父母호되 竭其力하며 事君호되 致其身하며 與朋友交호되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라호리라 <論語, 學而第一>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함과 바꾸며, 부모를 섬기되 제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기되 제 몸을 바칠 수 있으며, 벗과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아직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가 배웠다고 이를 것이다.”
3 子曰 夏禮言之 杞不足徵也 殷禮言之 宋不足徵也 文獻 不足故也 足則吾徵之矣로리라 <論語, 八佾第三>  
공자가 말하였다. “하(夏)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후예인〉 기(杞)나라가 충분하게 증명하지 못하고, 은(殷)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후예인〉 송(宋)나라가 충분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문헌이 충분하지 않은 까닭이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그 말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4 子曰 惟仁者 好人하며 惡人이니라 <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인자(仁者)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5 子曰 誰出不由戶리오마는 何莫由斯道也 <論語, 雍也第六>  
공자가 말하였다. “누구인들 나갈 때 방문을 지나지 않을 수 있으랴마는 〈그런데〉 어찌하여 이 도(道)를 지나려 하지 않는가?”
6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唯天 爲大어시늘 唯堯則之하시니 蕩蕩乎民無名焉이로다 <論語, 泰伯第八>  
공자가 말하였다. “크구나, 요임금이 임금 노릇한 것이여! 높고 큼이여! 오직 하늘만이 위대하거늘 오직 요임금만이 (하늘의 위대함을) 본받으니넓고 넓음이여! 백성이 그것을 형용하지 못하는구나.
7 子曰 法語之言 無從乎 改之爲貴니라 巽與之言 無說乎 繹之爲貴니라 說而不繹하며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니라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법도대로 이르는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공손하고 부드러운 말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실마리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기뻐하면서도 풀어내지 못하고, 따르면서도 고치지 않으면 내가 (그것을) 어찌할 수 없겠구나.”
8 季路問事鬼神한대 子曰 未事人이면事鬼리오 敢問死하노이다 曰 未知生이면 焉知死리오 <論語, 先進第十一>  
계로가 귀신 섬김을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을 섬길 수 없으면,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계로가〉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삶을 알지 못하면,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9 何如 對曰 非曰 願學焉하노이다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하노이다 <論語, 先進第十一>  
(공자가 말하였다) "적아,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것을 잘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이나, 혹 회동에 현단복을 입고 장포관을 쓰고 소상이 되기를 바란다.”
10 唯赤則非邦也與잇가 宗廟會同 非諸侯而何 赤也爲之小爲之大리오 <論語, 先進第十一>  
“오직 적의 말은 나라가 아닌가?” “종묘와 회동이 제후(의 일)가 아니면 무엇인가? 적이 작음이 된다면, 누가 큼이 될 수 있겠는가?”
11 子曰 擧直錯諸枉이면 使枉者直이니라 <論語, 顔淵第十二>  
공자가 말하였다. “정직한 사람을 들고 여러 굽은 사람을 버리면 굽은 사람을 곧게 할 수 있다.”
12 樊遲退하여 見子夏曰 鄕也 吾見於夫子而問知호니 子曰 擧直錯諸枉이면 使枉者直이라하시니 何謂也 <論語, 顔淵第十二>  
번지가 물러나서 자하를 보고서 말하였다. “지난번에 내가 선생님을 뵙고서 지혜를 물었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여러 굽은 사람을 버리면 굽은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다.’ 하시니, 무엇을 말한 것인가?”
13 子曰 愛之인댄 勿勞乎 忠焉인댄 勿誨乎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그를 사랑하면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에게 충성하면 가르쳐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 公伯寮 愬子路於季孫이어늘 子服景伯 以告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하나니 吾力肆諸市朝니이다 <論語, 憲問第十四>  
공백료가 계손에게 자로를 참소하자, 자복경백이 그것으로 고하여 말하였다. “선생이 진실로 공백료에게 마음을 의혹함이 있으니, 내 힘이 그래도 시장에 (그 시신을) 늘어놓을 수 있다.”
15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여이러니 <論語, 衛靈公第十五>  
진나라에 있으면서 양식이 떨어지니 따르는 사람들이 병들어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는데,
16 子曰 人弘道 非道弘人이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도를 크게 할 수 있지, 도가 사람을 크게 하는 것이 아니다.”
17 知及之하며守之라도 不莊以涖之 則民不敬이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지혜가 (그것에) 미치며 인이 (그것을) 잘 지켜도 장엄함으로 (그들에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18 知及之하며守之하며 莊以涖之라도 動之不以禮 未善也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지혜가 (그것에) 미치며 인이 (그것을) 잘 지키며 장엄함으로 (그들에게) 임해도 (그들을) 예로 고무하지 않으면 훌륭하지 않다.”
19 子張 問仁於孔子한대 孔子曰 行五者於天下 爲仁矣니라 請問之한대 曰 恭寬信敏惠 恭則不侮하고 寬則得衆하고 信則人任焉하고 敏則有功하고 惠則足以使人이니라 <論語, 陽貨第十七>  
자장이 인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다면 인(仁)이 된다.” 〈자장이〉 그것을 청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함, 은혜로움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기지 않고, 너그러우면 뭇사람들을 얻게 되고, 미더우면 남들이 그에게 일을 맡기고, 민첩하면 공이 있고, 은혜로우면 그로써 사람을 부릴 수 있다.”
20 吾豈匏瓜也哉繫而不食이리오 <論語, 陽貨第十七>  
내가 어찌 박이겠는가? 어찌 매달려 있어 먹지 (생략) 못하는 것과 같겠는가?”
21 子張曰 執德不弘하며 信道不篤이면爲有爲亡리오 <論語, 子張第十九>  
자장이 말하였다. 덕을 잡음이 넓지 못하며, 도를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어찌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어찌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22 曾子曰 吾聞諸夫子호니 孟莊子之孝也 其他어니와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니라 <論語, 子張第十九>  
증자가 말하였다. 내가 부자에게 들으니, 맹장자의 효는, 그 다른 일은 잘할 수 있으나, 그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사를 고치지 않은 것은, 이것은 잘하기 어렵다.
23 詩云 經始靈臺하여 經之營之하시니 庶民攻之 不日成之로다 經始勿亟하시나 庶民子來로다 王在靈囿하시니 麀鹿攸伏이로다 麀鹿濯濯이어늘 白鳥鶴鶴이로다 王在靈沼하시니 於牣魚躍이라하니 文王 以民力爲臺爲沼하시나 而民 歡樂之하여 謂其臺曰靈臺라하고 謂其沼曰靈沼라하여 樂其有麋鹿魚鼈하니 古之人 與民偕樂이라 樂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시경에 이르길, ‘영대를 공사하기 시작하여, 그 일을 헤아리고 그 일을 꾀하니, 서민이 그 일을 처리하자, 하루가 되지 않아 그것을 완성하도다. 공사 시작될 때 급히 하지 말라 하였으나, 서민들이 자식처럼 찾아왔도다. 왕께서 영유에 계시니, 암사슴이 편안히 엎드렸도다. 암사슴은 살지고 백조는 깨끗하도다. 왕께서 영소에 계시니, 아! 가득히 물고기가 뛰논다’ 하였으니,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대를 만들고 못을 만들었으나, 그러나 백성이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누대를 일러 영대라 말하고, 그 못을 일러 영소라 말하여, 그가 고라니와 사슴,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즐겼으니, 옛날의 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 때문에 즐길 수 있었습니다.
24 湯誓 曰 時日 害喪 予及女 偕亡이라하니 民欲與之偕亡이면 雖有臺池鳥獸獨樂哉리잇고 <孟子, 梁惠王上>  
《서경(書經)》 〈탕서(湯誓)〉에 이르길, ‘이 태양은 언제나 없어질까? 나와 네가 함께 없어지자’ 하니, 백성들이 그와 함께 없어지고자 하면, 비록 누대와 연못, 새와 짐승을 가졌더라도 어찌 홀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25 一之오하여늘 <孟子, 梁惠王上>  
‘누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까?’ 하거늘
26 對曰 不嗜殺人者 一之라호라 <孟子, 梁惠王上>  
대답하여 말하길, ‘사람 죽이기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27 與之오하여늘 <孟子, 梁惠王上>  
‘누가 그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까?’ 〈묻기에,〉
28 對曰 天下莫不與也 知夫苗乎잇가 七八月之間 旱則苗槁矣라가 油然作雲하여 沛然下雨 則苗浡然興之矣나니 其如是禦之리오 今夫天下之人牧 未有不嗜殺人者也 如有不嗜殺人者 則天下之民 皆引領而望之矣리니 誠如是也 民歸之 由水之就下하리니 沛然禦之리오호라 <孟子, 梁惠王上>  
대답하여 말하길, ‘세상에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왕은 저 이삭을 아십니까? 칠팔월의 사이에 가물면 이삭이 마르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쏴아! 비를 내리면, 이삭이 쑥쑥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이와 같다면, 누가 싹이 자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천하의 임금 중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세상의 백성이 모두 목을 빼고 그 임금을 바라볼 것이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백성이 그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흘러감과 같을 것이니, 성대한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29 曰 德 何如則可以王矣리잇고 曰 保民而王이면 莫之禦也리이다 <孟子, 梁惠王上>  
〈선왕이〉 말하였다. “덕이 어떠하면, 왕도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을 보호하여 왕 노릇하면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30 今王 發政施仁하사 使天下仕者 皆欲立於王之朝하며 耕者 皆欲耕於王之野하며 商賈 皆欲藏於王之市하며 行旅 皆欲出於王之途하시면 天下之欲疾其君者 皆欲赴愬於王하리니 其如是禦之리잇고 <孟子, 梁惠王上>  
지금 왕이 정령(政令)을 발표하고 인정(仁政)을 베풀어서, 천하의 벼슬아치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서 서고자 하게 하고, 밭 가는 이〈로 하여금〉 모두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자 하〈게 하며〉, 상인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저자에서 보관하고자 하〈게 하며〉, 여행하는 나그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에 나오고자 하〈게 하며〉, 천하의 자기 군주를 미워하고자 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에게 달려가 하소연하고자 하〈게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누가 〈몰려드는 백성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31 今王 鼓樂於此어시든 百姓 聞王 鍾鼓之聲 管籥之音하고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 庶幾無疾病與 何以鼓樂也오하며 今王 田獵於此어시든 百姓 聞王 車馬之音하며 見羽旄之美하고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 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오하면 無他 與民同樂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지금 왕께서 여기에서 음악을 연주하면 백성들이 왕의 종과 북의 소리와 피리와 젓대의 소리를 듣고 모두 흔연히 기뻐하는 낯 빛이 있어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길, ‘우리 왕이 행여 질병이 없으신가? 어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가?’ 하며, 지금 왕께서 여기에서 사냥하시면 백성들이 왕의 수레와 말의 소리를 듣고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흔연히 기쁜 낯 빛이 있어서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길, ‘우리 왕이 행여 질병이 없으신가? 어찌 사냥을 할 수 있는가?’ 하면, 이는 다름이 아닙니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해서입니다.
32 齊宣王 問曰 交鄰國 有道乎잇가 孟子對曰 有하니 惟仁者라야以大事小하나니 是故 事葛하시고 文王 事昆夷하시니이다 惟智者라야以小事大하나니 大王 事獯鬻하시고 句踐 事吳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제(齊)나라 선왕이 물어 말하였다. “이웃 나라와 사귐에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이런 까닭으로 탕(湯)왕이 갈(葛)나라를 섬겼고, 문왕(文王)이 곤이(昆夷)를 섬겼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때문에 태왕(大王)이 훈육(獯鬻)을 섬겼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섬겼습니다.”
33 孟子對曰 是謀 非吾所及也로소이다 無已則有一焉하니 鑿斯池也하며 築斯城也하여 與民守之하여 效死而民弗去 則是可爲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 계책은 제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두지 말라.’ 하시면 거기엔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해자(垓子)를 (생략)파며 성벽을 (생략)쌓아서 백성과 함께 이곳을 지켜서 목숨을 바치면서 백성이 떠나지 않는다면 이 계책은 해볼 만합니다.”
34 或曰 世守也 非身之所爲也 效死勿去라하나니 <孟子, 梁惠王下>  
혹자는 말하길, ‘대대로 지킨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목숨을 바치고 떠나지 말라.’ 합니다.
35 樂正子見孟子曰 克 告於君하니 爲來見也러시니 嬖人有臧倉者沮君이라 是以不果來也하시니이다 曰 行或使之 止或尼之 行止 非人所 吾之不遇魯侯 天也 臧氏之子 焉使予 不遇哉리오 <孟子, 梁惠王下>  
악정자(樂正子)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임금께 고하니, 임금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뵙고자 하였는데, 폐인(嬖人)에 장창(臧倉)이란 자가 있어 임금을 막았습니다. 임금이 이 때문에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가려한 것이 누군가 가도록 시켜서였으며 그만 둔 것도 누군가 가는 것을 막아서였지만 가려는 것과 그만 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내가 노나라 제후(평공)를 만나지 못한 것은 천명이니, 장씨란 사람이 어찌 나로 하여금 〈노 평공을〉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36 行此五者 則鄰國之民 仰之若父母矣리니 率其子弟하여 攻其父母 自生民以來 未有濟者也 如此則無敵於天下하리니 無敵於天下者 天吏也 然而不王者 未之有也니라 <孟子, 公孫丑上>  
진실로 이 다섯 가지를 행할 수 있다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우러러 보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할 것이니, 그 자제를 거느리고 그 부모를 공격하는 것은 백성이 생겨난 이래로 해낼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았으니, 이와 같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면 천명을 받은 관리이니,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하지 못한 자는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37 柳下惠 不羞汚君하며 不卑小官하여 進不隱賢하여 必以其道하며 遺佚而不怨하며 阨窮而不憫하더니 曰 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인들 爾焉浼我哉리오하니 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하여 援而止之而止하니 援而止之而止者 是亦不屑去已니라 <孟子, 公孫丑上>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작은 벼슬도 하찮게 여기지 않아, 벼슬에 나아가면 현명함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로 하였으며,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궁하여도 근심하지 않았다. 때문에 말하길,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고 몸을 드러내더라도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수 있겠는가’ 하니, 때문에 유유자적하게 그와 함께 하여도 그에게서 자신을 잃지 않아 매달려서 자기를 붙잡으면 그쳤으니, 매달려서 자기를 붙잡으면 그친 것은 이 또한 떠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38 孔子曰 大哉 堯之爲君이여 惟天 爲大어시늘 惟堯則之하시니 蕩蕩乎民無名焉이로다 君哉 舜也 巍巍乎有天下而不與焉이라하시니 堯舜之治天下 豈無所用其心哉시리오마는 亦不用於耕耳시니라 <孟子, 滕文公上>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크구나. 요(堯)가 임금 노릇 함이여! 오직 하늘이 위대하거늘, 오직 요임금이 하늘을 본받았으니, 넓고 넓어 백성이 그것을 형용할 수 없도다. 임금답구나, 순(舜)이여! 우뚝히 천하를 소유했지만, 천하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다.’고 하였으니, 요와 순이 천하를 다스림에 어찌 그 마음을 쓴 것이 없겠는가? 다만 농사에 에 쓰지 않았을 뿐이라네.
39 吾聞用夏變夷者 未聞變於夷者也로라 陳良 楚産也 悅周公仲尼之道하여 北學於中國이어늘 北方之學者 未或之先也하니 彼所謂豪傑之士也 子之兄弟 事之數十年이라가 師死而遂倍之온여 <孟子, 滕文公上>  
나는 중국으로 오랑캐를 바꾼다는 것은 들었고, 오랑캐에게 변화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네. 진량(陳良)은 초(産)나라 태생인데, 주공(周公)과 중니(仲尼)의 도를 좋아하여 북쪽으로 와 중국에서 배웠는데, 북방의 배우는 자들이 어떤 이도 진량을 앞설 수 없었으니, 저 사람은 이른바 호걸의 선비라네. 그대의 형제가 수십 년 진량을 섬기다가 스승(진량)이 죽자 마침내 스승을 배반하였구나!
40 曰 夫物之不齊 物之情也 或相倍蓰하며 或相什伯하며 或相千萬이어늘 子比而同之하니 亂天下也로다 巨屨小屨同賈 人豈爲之哉리오 從許子之道 相率而爲僞者也治國家리오 <孟子, 滕文公上>  
〈맹자가〉 말하였다. “대체로 물건〈의 품질〉이 같지 않은 것은 물건의 실상이네. 혹 서로의 차이가 두 배 다섯 배이며, 혹 서로의 차이가 열 배 백 배이며, 혹 서로의 차이가 천 배 만 배이거늘, 그대가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외형만〉 비교하여 가격을 똑같이 하니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네. 큰 신발 작은 신발이 같은 값이면, 사람들이 어찌 큰 것을 만들겠는가? 허자의 도를 따르면 서로 이끌어서 거짓을 행할 것이네. 어찌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41 戴盈之曰 什一 去關市之征 今玆未이란대 請輕之하여 以待來年然後호되 何如하니잇고 <孟子, 滕文公下>  
〈송(宋)나라 대부〉 대영지(戴盈之)가 말하였다. “십분의 일의 〈정전법을 시행하고〉 관문과 시장의 관세와 점포세를 철폐하는 것을 올해에 할 수 없으니, 청하건데 세금을 가볍게 해서 내년을 기다린 뒤에 폐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42 孟子曰 於齊國之士 吾必以仲子 爲巨擘焉이어니와 雖然이나 仲子惡이리오 充仲子之操 則蚓而後 可者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제(齊)나라의 선비 중에 나는 반드시 중자(仲子)를 거벽(巨擘)으로 여기네. 비록 그렇지만 중자를 어찌 청렴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자의 지조를 채우려면 지렁이인 뒤에야 가능할 것이네.
43 以母則不食하고 以妻則食之하며 以兄之室則弗居하고 以於陵則居之하니 是尙爲充其類也乎 若仲子者 蚓而後充其操者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어머니가 〈준〉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먹지 않고, 아내가 〈준〉 경우에는 그것을 먹으며, 형의 집에 〈사는〉 경우에는 〈의롭지 않다 여겨〉 살지 않고, 오릉에 〈사는〉 경우에는 그곳에 살았으니, 이런데도 오히려 그 〈지조의〉 유를 채울 수 있다 하겠는가? 중자와 같은 자는 지렁이가 〈된〉 뒤에야 그 지조를 채울 자라네.”
44 今也 欲無敵於天下而不以仁하나니 是猶執熱而不以濯也 詩云 誰執熱하여 逝不以濯이리오하니라 <孟子, 離婁上>  
지금에 천하에서 대적할 자가 없기를 바라면서 인(仁)을 행하지 않으니, 이것은 뜨거운 것을 잡고도 손 씻는 것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시경》 〈상유(桑柔)〉에 이르길, ‘누가 뜨거운 것을 잡고 손 씻기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45 詩云 其何이리오 載胥及溺이라하니 此之謂也니라 <孟子, 離婁上>  
《시경》 〈상유(桑柔)〉에 이르길, ‘그 어찌 잘 될 수 있겠는가? 곧 서로 〈재난에〉 빠지는 데에 까지 미친다.’ 하니, 이것을 이른 것이다.”
46 至誠而不動者 未之有也 不誠이면 未有動者也니라 <孟子, 離婁上>  
지극히 성실하면서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있지 않았으니, 성실하지 못하면 감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았다.
47 孟子曰 求也爲季氏宰하여改於其德이요 而賦粟 倍他日한대 孔子曰 求 非我徒也로소니 小子 鳴鼓而攻之 可也라하시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염구(冉求)가 계씨(季氏)의 가신이 되어서 계씨의 덕을 고칠 수 없었고, 세금이 다른 날보다 배가 되자, 공자가 말하길, ‘구는 나의 무리가 아니다. 제자들아, 북을 울려서 그를 성토함이 좋겠다.’ 하였다.
48 孟子曰 事孰爲大 事親 爲大하니라 守孰爲大 守身 爲大하니라 不失其身而事其親者 吾聞之矣 失其身而事其親者 吾未之聞也로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섬김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지킴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제 자신을 잃지 않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았고, 제 자신을 잃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
49 孟子曰 以善服人者 未有服人者也 以善養人然後 服天下하나니 天下不心服而王者 未之有也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선(善)으로 남을 복종시키려는 자는 남을 복종시킬 수 있는 자가 없었으니, 선으로 남을 길러준 뒤에 천하를 복종시킬 수 있으니,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았는데도 왕노릇한 자는 그런자는 아직 있지 않았다.”
50 曰 以行與事 示之者 如之何잇고 曰 天子薦人於天이언정使天으로 與之天下 諸侯薦人於天子언정使天子 與之諸侯 大夫薦人於諸侯언정使諸侯 與之大夫 昔者 堯薦舜於天而天受之하시고 暴之於民而民受之하니 曰 天不言이라 以行與事 示之而已矣라하노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주었다’라는 것은 그것을 어찌 했다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천자는 사람을 하늘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하늘로 하여금 그에게 천하를 주게 할 수 없으며, 제후는 사람을 천자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천자로 하여금 그에게 제후의 직을 주게 할 수 없으며, 대부는 사람을 제후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제후로 하여금 그에게 대부의 직을 주게 할 수 없다네. 옛날에 요임금이 순임금을 하늘에 천거하자 하늘은 순을 받아들였고, 순을 백성에게 드러내자 백성이 순을 받아들였다네. 그러므로 말하길,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한 것이네.”
51 丹朱之不肖 舜之子亦不肖하며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하여 施澤於民하고하여 敬承繼禹之道하며 益之相禹也 歷年하여 施澤於民 未久하니 舜禹益相去久遠 其子之賢不肖 皆天也 非人之所爲也 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니라 <孟子, 萬章上>  
〈요의 아들〉 단주가 어리석었는데 순임금의 아들 또한 어리석었으며, 순이 요를 돕고 우가 순을 도운 것은 거쳐온 햇수가 많아서 백성에게 혜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었고, 계는 현명하여 공경히 우임금의 도를 이을 수 있었다네. 〈반면에〉 익이 우임금을 도운 것은 거쳐온 햇수가 적어서 백성에게 혜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네. 〈이렇게〉 순과 우와 익의 사이가 오래되고 먼 것, 그 아들의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것은 모두 천운이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그것을 한 적이 없는데도 〈그렇게〉 된 것은 천운이고, 그것을 이르게 함이 없는데도 〈그렇게〉 이른 것은 천명이라네.
52 知虞公之不可諫而去之秦하니 年已七十矣 曾不知以食牛 干秦穆公之爲汚也 可謂智乎 不可諫而不諫하니 可謂不智乎 知虞公之將亡而先去之하니 不可謂不智也니라 時擧於秦하여 知穆公之可與有行也而相之하니 可謂不智乎 相秦而顯其君於天下하여 可傳於後世하니 不賢而之乎 自鬻以成其君 鄕黨自好者 不爲 而謂賢者爲之乎 <孟子, 萬章上>  
〈백리해는〉 우공이 간언할 수 없음을 알고서 떠나 진으로 가니, 〈이때의〉 나이가 이미 칠십이었네. 일찍이 소를 먹이는 것으로써 진나라 목공에게 간언하는 것이 더러운 일이 됨을 알지 못했다면,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간언할 수 없어서 간언하지 않았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 망하려는 것을 알고서 먼저 그곳을 떠났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네. 당시에 진나라에 등용되어 ‘목공은 함께 행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를 도왔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를 도와서 그 임금을 천하에 드러내어 후세에 전할 수 있게 하니, 현명하지 않고서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팔아서 그 임금을 만드는 것은 시골의 스스로를 아끼는 자들도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백리해 같은〉 현명한 자가 ‘그일을 했다’고 이르겠는가?”
53 柳下惠 不羞汚君하며 不辭小官하며 進不隱賢하여 必以其道하며 遺佚而不怨하며 阨窮而不憫하며 與鄕人處호되 由由然不忍去也하여 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인들 爾焉浼我哉리오하니 聞柳下惠之風者 鄙夫寬하며 薄夫敦하니라 <孟子, 萬章下>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으며, 나아가면 현명함을 숨기지 않아서 반드시 그 도리로써 하고, 버려지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곤궁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으며, 시골 사람과 있어도 태연하게 차마 떠나지 않고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옆에서 옷을 걷고 벌거벗더라도,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니, 그러므로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비루한 사내는 관대해지고, 야박한 사내는 후해진다.
54 欲見賢人而不以其道 猶欲其入而閉之門也니라 夫義 路也 門也 惟君子由是路하며 出入是門也 詩云 周道如底하니 其直如矢로다 君子所履 小人所視라하니라 <孟子, 萬章下>  
현명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면서 올바른 도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가 들어오길 바라면서 그 문을 닫는 것과 같다네. 무릇 의리는 길이고 예는 문이니, 오직 군자만이 이 길을 경유하고 이 문을 출입할수 있다네. 《시경》 〈대동(大東)〉에 이르길, ‘큰 길은 숫돌과 같으니, 그 곧음은 화살과 같다. 군자가 밟는 것이고, 소인이 우러러보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네.”
55 是故 所欲 有甚於生者하며 所惡 有甚於死者하니 非獨賢者有是心也 人皆有之언마는 賢者 勿喪耳니라 <孟子, 告子上>  
이 때문에 원하는 바가 삶보다 심한 것이 있으며,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심한 것이 있으니, 오직 어진 사람만이 이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어진 사람이 잃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56 孟子曰 今有無名之指 屈而不信 非疾痛害事也언마는 如有信之者 則不遠秦楚之路하나니 爲指之不若人也니라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무명지가 있어 굽혀져 펴지지 않는 것이 아프거나 일에 해로운 것이 아니지만, 만약 그것을 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길을 멀게 여기지 않고 〈찾아가니,〉 손가락이 남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57 人之所貴者 非良貴也 趙孟之所貴 趙孟 賤之니라 <孟子, 告子上>  
남이 귀하게 해준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니다. 조맹(趙孟)이 귀하게 해준 것을 조맹이 천하게 할 수 있다.
58 孟子曰 今之事君者曰 我爲君하여 辟土地하며 充府庫라하나니 今之所謂良臣이요 古之所謂民賊也 君不鄕道하여 不志於仁이어든 而求富之하니 富桀也니라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오늘날의 임금을 섬기는 자들이 말하길, ‘나는 임금을 위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창고를 채울 수 있다’ 하니, 오늘날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이고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적이다. 임금이 도를 향하지 않아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군주를 부유하게 할 것을 찾으니, 이것은 걸(桀)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59 爲君하여 約與國하여 戰必克이라하나니 今之所謂良臣이요 古之所謂民賊也 君不鄕道하여 不志於仁이어든 而求爲之强戰하니 輔桀也니라 <孟子, 告子下>  
〈오늘날엔〉 ’나는 임금을 위하여 동맹국가 맹약하여 전쟁에 반드시 이길 수 있다’ 하니, 오늘날의 이른바 훌륭한 신하이고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적이다. 임금이 도를 향하지 않아 인(仁)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임금을 위하여 억지로 싸울 것을 찾으니, 이것은 걸을 돕는 것이다.
60 孟子曰 舜之居深山之中 與木石居하시며 與鹿豕遊하시니 其所以異於深山之野人者 幾希러시니 及其聞一善言하시며 見一善行하사는 若決江河 沛然莫之禦也러시다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순임금이 깊은 산의 속에 거처할 적에 나무와 돌과 거처하며 사슴과 돼지와 노닐었으니, 그 깊은 산의 야인과 다른 것이 드물었는데, 그 하나의 선한 말을 듣고 하나의 선한 행실을 보게 되자 마치 양자강과 황하를 터놓은 듯하여 성대한 것을 막을 수 없었다.”
61 無以饑渴之害 爲心害 則不及人 不爲憂矣리라 <孟子, 盡心上>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방해를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를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62 君子引而不發하나 躍如也하여 中道而立이어든 者從之니라 <孟子, 盡心上>  
군자는 〈가르칠 때에〉 〈활시위를〉 당기고 쏘지 않으나 튀어 나갈 듯하여 중도에 서 있으면 능한 자는 그것을 따라 한다네.”
63 孟子曰 梓匠輪輿 與人規矩언정 不能使人巧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목수와 수레공은 남에게 그림쇠와 곱자를 줄 수 있지만 남을 뛰어나게 할 수 없다.”
64 孟子曰 聖人 百世之師也 伯夷柳下惠 是也 聞伯夷之風者 頑夫廉하고 懦夫有立志하며 聞柳下惠之風者 薄夫敦하고 鄙夫寬하나니 奮乎百世之上이어든 百世之下 聞者 莫不興起也하니 非聖人而若是乎 而況於親炙之者乎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백 대의 스승이니,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가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욕심 많은 자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가 뜻을 세우는 일이 있게 된다.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각박한 자가 돈독해지고 천박한 자가 너그러워진다. 백 대의 앞에서 분발하면 백 대의 뒤에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고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성인에게〉 직접 배운 사람에 있어서랴!”
65 充無欲害人之心이면 而仁 不可勝用也充無穿踰之心이면 而義 不可勝用也니라 <孟子, 盡心下>  
사람이 남을 해치고자 하지 않는 마음을 확충할 수 있다면 인(仁)을 이루 다 쓸 수 없고, 사람들이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확충할 수 있다면 의(義)를 이루 다 쓸 수 없다.
66 充無受爾汝之實이면 無所往而不爲義也니라 <孟子, 盡心下>  
사람이 ‘너’라고 무시 받지 않으려는 실제를 확충할 수 있다면, 가는 곳마다 의(義)가 아님이 없을 것이다.
67 人莫不飮食也언마는知味也니라 <中庸, 中庸>  
사람이 마시고 먹지 않는 이가 없지만 맛을 알 수 있는 이가 적다.”
68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되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며 夫婦之不肖로도 可以能行焉이로되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能焉하며 天地之大也에도 人猶有所憾이라 君子語大인댄 天下莫載焉하며 語小인댄 天下莫破焉이니라 <中庸, 中庸>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그것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부부의 불초함으로도 (그것을) 해낼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에)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천지의 큼에도 사람이 오히려 서운해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군자의 큰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실을 수 없으며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쪼갤 수 없다.
69 君子之道四 丘未一焉이로니 所求乎子 以事父하며 所求乎臣으로 以事君하며 所求乎弟 以事兄 未能也하며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로니 庸德之行하며 庸言之謹하여 有所不足이어든 不敢不勉하며 有餘어든 不敢盡하여 言顧行하며 行顧言이니 君子胡不慥慥爾리오 <中庸, 中庸>  
군자의 도 넷 중에 나는 하나도 잘하지 못한다. 자식에게 요구하는 바로 부모를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신하에게 요구하는 바로 임금을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아우에게 요구하는 바로 형을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벗에게 요구하는 바를 먼저 (그것을) 베푸는 것을 잘하지 못하며, 떳떳한 덕을 행하며 떳떳한 말을 삼가하여, 넉넉하지 않은 바가 있거든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넉넉함이 있거든 감히 다하지 못하여,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니, 군자가 어찌 독실히 하지 않겠는가?
70 惟天下至誠이야盡其性이니 盡其性이면盡人之性이요 盡人之性이면盡物之性이요 盡物之性이면 則可以贊天地之化育이요 可以贊天地之化育이면 則可以與天地參矣니라 <中庸, 中庸>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 성을 다할 수 있으니 그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을 것이오, 사람의 성을 다 할 수 있다면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며, 물건의 성을 다할 수 있다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면 천지와 더불어 참여할 수 있다.
71 其次 致曲이니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 唯天下至誠이야니라 <中庸, 中庸>  
그 다음은 구석을 이르게 하는 것이다. 구석에도 성실할 수 있으니 성실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뚜렷이〉 드러나고 뚜렷이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화한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실함이라야 화하게 할 수 있다.
72 食食어든 敎以右手하며 이어든 男唯女兪하며 男鞶革이요 女鞶絲니라 <小學, 立敎第一>  
자식이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오른쪽 손을 사용하도록 가르치며, 말을 할 수 있으면 남자는 빨리 대답하고 여자는 느리게 대답하게 하며, 남자의 띠는 가죽으로 하고. 여자의 띠는 실로 한다.
73 子夏曰 賢賢하되 易色하며 事父母하되 竭其力하며 事君하되 致其身하며 與朋友交하되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라하리라 <小學, 立敎第一>  
자하가 말하였다. 현인을 현명하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함과 바꿔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되 그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기되 그 몸을 바칠 수 있으며, 친구와 사귀되 말함에 신의가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74 在上不驕하면 高而不危하고 制節謹度하면 滿而不溢이니 然後에야 保其社稷하며 而和其民人하리니 此諸侯之孝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위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높아도 위태롭지 않으며, 예절에 알맞게 하고 법도를 삼가면 가득차도 넘치지 않는다. 그러한 뒤에 그 사직을 보존하며 그 백성을 화목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제후의 효도이다.
75 非先王之法服이어든 不敢服하며 非先王之法言이어든 不敢道하며 非先王之德行이어든 不敢行이니 然後에야 保其宗廟하리니 此卿大夫之孝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선왕의 법도에 맞는 옷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않으며, 선왕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으며,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는다. 그러한 뒤에 그 종묘를 보존할 수 있으니, 이것이 경대부의 효도이다.
76 以孝事君則忠이요 以敬事長則順이라 忠順 不失하여 以事其上然後에야 守其祭祀하리니 此士之孝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효로써 임금을 섬기면 충성이 되고, 공경으로써 어른을 섬기면 순종이 된다. 충성과 순종을 잃지 않아서 그 윗사람을 섬기고, 그러한 뒤에 그 제사를 지킬 수 있으니, 이것은 선비의 효이다.
77 孔子曰 君子事君하되 進思盡忠하며 退思補過하여 將順其美하고 匡救其惡하나니 上下相親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임금을 섬길 적에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며, 물러나서는 과실을 바로잡을 것을 생각하여 그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따르고 그 나쁜 것을 바로잡아 구한다. 그러므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친할 수 있는 것이다.
78 賢者 狎而敬之하고 畏而愛之하며 愛而知其惡하고 憎而知其善하며 積而하며 安安而하나니라 <小學, 敬身第三>  
현자는 친하면서도 (그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며, 사랑하면서도 그 악함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선함을 알며, (재물을) 쌓으면서도 흩어 줄 수 있으며, 편안함을 편안히 여기면서도 (의에) 옮길 수 있다.
79 淮南子曰 周公之事文王也 行無專制하시며 事無由己하시며 身若不勝衣하시며 言若不出口하시며 有奉持於文王 洞洞屬屬하사 如將不勝하시며 如恐失之하시니 可謂子矣로다 <小學, 稽古第四>  
회남자가 말하였다. 주공이 문왕을 섬길 적에 행실은 마음대로 결정함이 없었으며,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음이 없었으며,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였으며, 말은 입에서 내지 못하는 듯이 하였다. 문왕에게 잡음이 받들어 있을 때 공경하고 공경하여 장차 이기지 못할 듯이 하였으며,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듯이 하였으니, 자식의 도리를 잘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80 公明宣曰 安敢不學이리잇고 見夫子居庭호니 親在어시든 叱咤之聲 未嘗至於犬馬하실새 說之하여 學而未하며 見夫子之應賓客하니 恭儉而不懈惰하실새說之하여 學而未하며 見夫子之居朝廷하니 嚴臨下而不毁傷하실새 說之하여 學而未하니 說此三者하여 學而未이니 安敢不學而居夫子之門乎리잇고 <小學, 稽古第四>  
공명선이 말하였다. “어찌 감히 배우지 않았겠는가? 내가 선생님이 뜰에 있음을 보니, 부모가 있으면 꾸짖는 소리가 일찍이 개와 말에게도 이르지 않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한다. 내가 선생님이 빈객을 응접함을 보니, 공손하고 검소하면서 태만하고 게으르지 않으므로, 내가 (그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한다. 내가 선생님이 조정에 있는 것을 보니, 엄격히 아랫사람에게 임하면서 훼상하지 않으므로, 내가 (그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 가지 것을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잘하지 못하니, 내가 어찌 감히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는가?
81 夫寵而不驕하며 驕而能降하며 降而不憾하며 憾而眕者 鮮矣니이다 <小學, 稽古第四>  
무릇 총애를 받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교만하면서도 낮출 수 있으며, 낮추면서도 서운해하지 않으며, 서운해하면서도 자중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82 公曰 善哉 何謂威儀 對曰 有威而可畏 謂之威 有儀而可象 謂之儀 有君之威儀하면 其臣 畏而愛之하고 則而象之 有其國家하여 令聞 長世하며 有臣之威儀하면 其下畏而愛之 能守其官職하여 保族宜家하나니 順是以下皆如是 是以 上下相固也니이다 <小學, 稽古第四>  
공이 말하였다. “좋구나. 무엇을 위의(威儀)라 이르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위엄이 있어 두려워할 만함을 (그것을) 위라 말하고, 예의가 있어 본받을 만함을 (그것을) 의라 말한다. 임금이 임금의 위의가 있으면, 그 신하가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법칙으로 삼#아 (그를) 본받는다. 그러므로 그 국가를 잘 보유하여 훌륭한 명성이 후세에 오래간다. 신하가 신하의 위의가 있으면 그 아랫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 관직을 잘 지켜 종족을 보존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한다. 이를 따라 이로써 아래가 모두 이와 같다. 이 때문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83 顔子孟子 亞聖也 學之雖未至 亦可爲賢人이니 今學者若知此 則顔孟之事 我亦可學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안자와 맹자는 (공자) 버금가는 성인이니, (그들을) 배워 비록 이르지 못하더라도 또한 어진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오늘날 배우는 사람이 만약 이를 알 수 있으면 안자와 맹자의 일을 나 또한 배울 수 있다.
84 言溫而氣和 則顔子之不遷 漸可學矣 過而하며 又不憚改 則顔子之不貳 漸可學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말이 온화하고 기운이 화하면 안자가 (노여움을 3자에게) 옮기지 않은 것을 점차 배울 수 있고, 잘못하고서 잘 뉘우치며 또 고치기를 꺼리지 않으면 안자가 (잘못을) 거듭하지 않음을 점차 배울 수 있다.
85 戒爾勿嗜酒하노니 狂藥非佳味 移謹厚性하여 化爲凶險類하나니 古今傾敗者 歷歷皆可記니라 <小學, 嘉言第五>  
너에게 술을 즐기지 말 것을 경계하니, 미치게 하는 약이고, 아름다운 맛이 아니다. 삼가고 후한 성품을 바꿀 수 있어 화하여 흉하고 거친 부류가 되게 하니, 옛날과 지금에 엎어지고 패망한 사람을 두루두루 모두 기록할 수 있다.
86 冠禮之廢久矣 近世以來 人情 尤爲輕薄하여 生子猶飮乳 已加巾帽하고 有官者 或爲之製公服而弄之 過十歲猶總角者蓋鮮矣 彼責以四者之行인들知之리오 往往 自幼至長 愚騃如一하니 由不知成人之道故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관 쓰는 예가 폐해진 지 오래이니, 가까운 세대 이후로 사람의 정이 더욱 가볍고 박하게 되어서 아들을 낳으면, 아직 젖을 먹는데도 이미 두건과 모자를 씌우고, 관작이 있는 사람은 혹 (그를) 위해 벼슬아치의 옷을 만들어 (그를) 희롱한다. 열 살이 지나도록 오히려 땋은 머리를 뿔처럼 한 사람이 대개 적으니, 저들을 네 가지의 행실로써 책망한들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때때로 어렸을 때부터 장성함에 이르도록 우매하고 어리석음이 한결같으니, 완성한 사람의 도를 알지 못하는 연유의 까닭이다.
87 古禮 雖稱二十而冠하나 然世俗之弊 不可猝變이니 若敦厚好古之君子 俟其子年十五以上 通孝經論語하여 粗知禮義之方然後 冠之 斯其美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옛날의 예에 비록 20살이고서 관례를 한다고 했으나 그러나 세속의 폐단을 갑자기 바꿀 수 없으니, 만약 돈독하고 후하여 옛것을 좋아하는 군자가 그 아들의 나이가 열다섯 이상에 효경과 논어를 잘 통달하여 대략 예절과 의리의 방향을 알기를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를) 관례 하면, 이에 그 아름다울 것이다.”
88 呂氏童蒙訓曰 事君如事親하며 事官長如事兄하며 與同僚如家人하며 待羣吏如奴僕하며 愛百姓如妻子하며 處官事如家事然後에야 盡吾之心이니 如有毫末不至 皆吾心 有所未盡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여씨의 동몽훈에 말하였다. “군주 섬기기를 어버이를 섬기듯이 하며, 관청의 우두머리를 섬기기를 형을 섬기듯이 하며, 같은 동료와 더불적에 집안사람같이 하며, 여러 아전을 대하기를 (집안의) 노비와 종같이 하며, 백성을 사랑하기를 아내와 자식같이 하며, 관청의 일을 처리하기를 집안일같이 하고 그러한 뒤에 제대로 나의 마음을 다한 것이니, 만일 털의 끝만큼이라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모두 나의 마음이 다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
89 是邑之長이니以事父兄之道 事之하여 過則歸己하고 善則惟恐不歸於令하여 積此誠意하면 豈有不動得人이리오 <小學, 嘉言第五>  
수령은 이는 고을의 우두머리이니, 만약 아버지와 형을 섬기는 도리로 잘 (그를) 섬겨, 허물은 자기에게 돌리고, 잘한 것은 오직 수령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하여 이러한 성실한 뜻을 쌓으면 어찌 사람을 움직이고 얻지 못함이 있겠는가?”
90 當官者 先以暴怒爲戒하여 事有不可어든 當詳處之 必無不中이어니와 若先暴怒自害害人이리오 <小學, 嘉言第五>  
관직을 맡은 사람은 우선 갑자기 성냄을 경계로 삼아서, 일에 해선 안 됨이 있으면 마땅히 자세히 (그것을) 처리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반드시 맞지 않음이 없거니와 만약 먼저 갑자기 성내면 다만 스스로 해칠 수 있을 뿐이니, 어찌 남을 해칠 수 있겠는가?
91 借使因婦財以致富하며 依婦勢以取貴라도 苟有丈夫之志氣者 無愧乎 <小學, 嘉言第五>  
가령 아내의 재물을 이용하여 부유함을 이루고, 아내의 세력에 의지하여 귀함을 취하더라도, 진실로 장부의 뜻과 기개가 있는 사람이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92 柳開仲塗曰 皇考治家하시되 孝且嚴이러시니 旦望 弟婦等 拜堂下畢하고 卽上手低面하여 聽我皇考訓誡하더니 曰 人家兄弟無不義者언마는 盡因娶婦入門하여 異姓 相聚하여 爭長競短하여 漸漬日聞하며 偏愛私藏하여 以致背戾하여 分門割戶하여 患若賊讐하나니 皆汝婦人所作이니라 男子剛腸者幾人 不爲婦人言所惑 吾見 多矣 若等 寧有是耶리오하여시든 退則惴惴하여 不敢出一語爲不孝事하니 開輩抵此賴之하여 得全其家云이로라 <小學, 嘉言第五>  
유개 중도가 말하였다. “선친이 집안을 다스리되 효성스럽고 또 엄격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자제와 며느리 무리가 대청 아래에서 절하고서 마치고는 곧 손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서 우리 선친의 가르침과 훈계를 들었는데 말하였다. ‘사람의 집에 형과 동생이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모두 아내를 맞이하여 집안에 들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고 단점을 다투어 점차 (참소가) 젖어 들고 날로 (참소가) 들리며,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저축하여 그것으로 등지고 어긋남에 이르러 집안을 나누고 집안을 쪼개어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처럼 여기니, 모두 너희 부인 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남자로서 심장이 강한 사람 몇 사람이 부인 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는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본 것이 많으니, 너희들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제와 며느리가) 물러나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효성스럽지 않은 일 함을 한 마디도 내지 못하니, 유개 무리가 지금에 이르도록 (그것에) 힘입어 그 집안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93 伊川先生曰 近世淺薄하여 以相歡狎으로 爲相與하며 以無圭角으로 爲相歡愛하나니 如此者 安리오 若要久인댄 須是恭敬이니 君臣朋友皆當以敬爲主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가까운 시대에 (인정이) 얕아지고 박해져서 서로 기뻐하고 친압함을 서로 친함으로 여기며 모나고 뿔이 없는 것을 서로 기뻐하고 사랑함으로 여기니, 이 같은 것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 가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이 공손하고 공경해야 하니, 군주와 신하와 벗과 친구가 모두 마땅히 공경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94 明道先生曰 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 將已放之心約之하여 使反復入身來尋向上去하여 下學而上達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성인과 현인의 천 마디 말과 만 마디 말이 단지 이는 사람들이 이미 놓아버린 마음을 가져다가 (그것을) 거두어서 돌이켜 회복하여 몸에 들어오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스스로 잘 찾아 위를 향해 가서 아래로 배우며 위로 통달하게 된다.”
95 歷玆以往으로 百行 皆然하니 從不能淳이나 去泰去甚하면 學之所知 施無不達하리라 世人 讀書하되言之하고 不能行之하나니 武人俗吏 所共嗤詆 良由是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를 지난 이후로 모든 행실이 다 그러하니, 비록 순전할 수 없더라도 지나친 것을 없애고 심한 것을 없애면 (그것을) 배워 아는 바를 시행함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글을 읽되 다만 (그것을) 잘 말하기만 하고 (그것을) 잘 행하지 못하니, 무예를 하는 사람과 세속의 아전에게 함께 비웃고 비방하는 바가 됨은 진실로 이 때문일 뿐이다.
96 方十餘歲러니 內則正獻公與申國夫人敎訓 如此之嚴하고 外則焦先生化導如此之篤이라 德器成就하여 大異衆人하니라 嘗言人生 內無賢父兄하며 外無嚴師友有成者少矣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당시 공은 막 십 여세였는데, 안으로는 곧 정헌공과 신국부인의 가르침이 이와같이 엄하였고 밖으로는 곧 초 선생의 교화와 지도가 이와같이 독실하였다. 그러므로 공의 덕기가 성취되어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 공은 일찍이 말하였다. “인생이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벗이 없고, 그러면서도 성공함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97 多病하여 病且滿三月이어늘 常賜告者數하되 終不瘉러니 最後 嚴助爲請告한대 上曰 汲黯 何如人也 曰 使黯 任職居官이면 亡以瘉人이어니와이나 至其輔少主守成하여는 雖自謂賁育이라도奪詭리이다 上曰 然하다 古有社稷之臣이러니 至如汲黯하여는 近之矣로다 <小學, 善行第六>  
급암이 병이 많아 병이 장차 3개월에 이르렀다. 상이 일찍이 고(휴가)를 준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끝내 낫지 않았다. 최후에는 엄조가 (그를) 위하여 고(휴가)를 청하였다. 상이 말하였다 “급암은 어떠한 사람인가?” (엄조가) 말하였다. “가령 급암이 직무를 맡아 관직에 있다면 이로써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 군주를 도와 왕업을 지키는 일에 이르러서는 비록 스스로 맹분, 하육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절개를) 빼앗거나 무너트릴 수 없을 것이다.” 상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에 사직의 신하가 있다고 하더니, 급암과 같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그것에) 가깝구나.”
98 帝雇謂太子曰 直哉 人情所難이어늘 而允 爲之하니 臨死不易辭 信也 爲臣不欺君 貞也 宜特除其罪하여 以旌之라하고 遂赦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황제가 돌아보며 태자에게 말하였다. “정직하구나! 이 인정에 (하기) 어려운 것이나 진실로 능히 (그것을) 하였으니 죽음에 임하여서도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은 신의이고, 신하가 되어 임금을 속이지 않는 것은 곧음이다. 마땅히 특별히 그 죄를 면제하여서 (그를) 정표 해야겠다." 하고 마침내 (그를) 사면하였다.
99 漢鮑宣 妻桓氏 字少君이라 嘗就少君父學하더니 父奇其淸苦하여 以女妻之하니 裝送資賄甚盛이어늘 不悅하여 謂妻曰 少君 生富驕하여 習美飾하니 而吾實貧賤이라 不敢當禮로다 妻曰 大人 以先生修德守約故 使賤妾으로 侍執巾櫛하시니 旣奉承君子인댄 惟命是從하리이다 笑曰 如是 是吾志也로다 妻乃悉歸侍御服飾하고 更著短布裳하여 與宣으로 共挽鹿車하여 歸鄕里하여 拜姑禮畢하고 提甕出汲하여 修行婦道하니 鄕邦 稱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한나라 포선의 아내 환씨는 자가 소군이다, 포선이 일찍이 소군의 아버지에게 나아가 배웠는데 (소군의) 아버지는 그의 청고함을 기특하게 여겨 딸로써 (그에게) 아내 삼아 주었는데, 실어 보내는 재물이 매우 성대하였다. 포선이 좋아하지 않으며 아내에게 말하였다. 소군이 부유하고 교만한 곳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꾸밈을 익혔는데, 나는 진실로 가난하고 천하니 예를 감당할 수 없다. 아내가 말하였다. “대인(아버지)이 선생(남편)이 덕을 닦고 검약을 지키는 것을 이유로 천첩으로 하여금 모시고 수건과 빗을 잡도록 하였습니다. 이미 군자(남편)를 받들게 되었으니 오직 명령을 이에 따를 뿐입니다.” 포선이 웃으며 말하였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나의 뜻이다.” 아내가 이에 모시는 이와 의복과 장식품을 모두 돌려보내고, 짧은 삼베 치마로 바꾸어 입고 포선과 함께 녹거를 끌며 (포선의) 마을로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절하는 예를 마치고 물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길어 부인의 도를 닦아 행하니 시골과 고을에서는 (그를) 칭찬하였다.
100 張公藝九世同居하더니 北齊隋唐 皆旌表其門하니라 麟德中 高宗 封泰山하고 幸其宅하여 召見公藝하여 問其所以睦族之道한대 公藝請紙筆以對하고 乃書忍字百餘하여 以進하니 其意以爲宗族所以不協 由尊長衣食 或有不均하며 卑幼禮節 或有不備어든 更相責望하여 遂爲乖爭하나니相與忍之 則家道雍睦矣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장공예는 9대가 함께 지내니, 북제와 수나라, 당나라에서 모두 그의 문에 정표하였다. 인덕 연간에 고종이 태산에 봉제사를 지내고 그 집에 행차하여 공예를 불러 보고는 그가 이로써 종족을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바의 도를 물었다. 공예가 종이와 붓으로 대답겠다고 청하고는 마침내 ‘참을 인‘자 백여 번을 써서 올렸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종족이 화목하지 않은 까닭은 존장의 옷과 음식에 혹 고르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낮고 어린 사람의 예절이 혹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번갈아가며 서로 책망하여 마침내 어긋나고 다투게 되기 때문이니, 진실로 서로 더불어 (그것을) 참을 수 있다면 집안의 도가 화목할 것입니다.’
101 溫公曰 國朝公卿 守先法하여 久而不衰者 唯故李相家 子孫 數世 至二百餘口로되 猶同居共爨하여 田園邸舍所收 及有官者俸祿 皆聚之一庫하여 計口日給餉하며 婚姻喪葬所費皆有常數하여 分命子弟하여 掌其事하니 其規模 大抵出於翰林學士宗諤所制也니라 <小學, 善行第六>  
온공이 말하였다. 국조의 공경 중에 옛 법을 제대로 지켜서 오래되어도 쇠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돌아가신 이상의 집안뿐이다. 자손이 몇 대 동안 200여 식구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함께 살면서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전원과 객점에서 거두어들이는 것과 및 관직이 있는 사람의 녹봉을 모두 한 창고에 (그것을) 모아서 식구를 헤아려 날마다 양식을 공급하였으며, 혼인과 초상과 장례에 쓰이는바 모두 일정한 액수가 있어서 자제에게 나누어 명하여 그 일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 규모는 대체로 한림학사 종악이 만든 것에서 나왔다.
102 張文節公 爲相하여 自奉 如河陽掌書記時러니 所親 或規之曰 今公 受俸不少어늘 而自奉 若此하니 雖自信淸約이라도 外人 頗有公孫布被之譏하니 公宜少從衆하라 嘆曰吾今日之俸 雖擧家錦衣玉食인들 何患不能이리오 顧人之常情 由儉入奢하고 由奢入儉하니 吾今日之俸常有 身豈常存이리오 一旦 異於今日이면 家人 習奢已久 不能頓儉하여 必至失所하리니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 如一日乎리오 <小學, 善行第六>  
장문절공이 재상이 되어 스스로 받듦이 하양의 장서기 일 때와 같았다. 친한 사람이 혹 (그를) 타일러 말하기를 지금 공은 받는 녹봉이 적지 않거늘 스스로 받듦이 이와 같으니, 비록 스스로 청렴하고 검약함을 믿더라도 바깥사람들은 자못 공손이 삼베 이불을 덮었던 비난을 하고 있다. 공은 마땅히 조금은 대중을 따르라.” 공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지금의 봉급으로 비록 온 가족에게 비단옷과 진수성찬을 먹이더라도 어찌 할 수 없을까 걱정하겠는가? 다만 사람의 상정은, 검소함에서 사치함으로 들어가기는 쉽고 사치함에서 검소함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내 지금의 녹봉이 어찌 항상 있을 수 있으며, 몸이 어찌 항상 보존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지금과 달라지면 집안 사람들은 익힌 지 사치를 이미 오래되어서 갑자기 검소할 수 없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을 잃는 상황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내가 있거나 벼슬에 떠나거나, 벼슬을 몸이 생존하거나 몸이 죽는 것을 하루처럼 하는 것만 같겠는가?”
103 我身이면 譽及父母니라 <新編四字小學, 父母2>  
내 몸이 어질 수 있으면, 명예가 부모에게 미치느니라.
104 如此 弟亦效之리라 <新編四字小學, 夫婦兄弟>  
형이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아우 또한 그를 본받으리라.
105 莫非師恩이니라 <新編四字小學, 師弟長幼朋友>  
효도할 수 있고 공경할 수 있음은 스승의 은혜가 아님이 없느니라.
106 總是師功이니라 <新編四字小學, 師弟長幼朋友>  
알 수 있고 실천 할 수 있음은 모두 스승의 공이니라.
107 立志章 第一: 初學 先須立志하되 必以聖人自期하여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이니라 蓋衆人與聖人 其本性則一也 雖氣質 不能無淸濁粹駁之異 而苟眞知實踐하여 去其舊染而復其性初 則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리니 衆人 豈可不以聖人自期乎 孟子道性善하시되 而必稱堯舜以實之曰 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시니 豈欺我哉시리오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첫째. 뜻을 세우는 것에 대한 글: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이 될 것으로 스스로 기약하여, 한 가닥의 털 만큼도 스스로 작다 여기고 물러나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체로 중인과 성인이 그 본성은 한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할 수 있어서 그 옛날에 물든 것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을 보태지 않더라도 온갖 선이 두루 갖추어질 것이니, 중인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는 ‘〈인간은〉 본성이 선(善)하다’고 말하되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어서 그것을 실증하며 말하길 ‘사람은 모두 그 때문에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시니,〉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108 持身章 第三: 學者必誠心向道하여 不以世俗雜事 亂其志라야 然後 爲學有基址 夫子曰 主忠信이라하시니 朱子釋之曰 人不忠信이면 事皆無實하여 爲惡則易하고 爲善則難이라 必以是爲主焉이라하시니 必以忠信爲主而勇下工夫라야 然後 有所成就 黃勉齋所謂眞實心地 刻苦工夫兩言 盡之矣로다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셋째. 몸가짐[持身]에 대한 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 그 뜻을 어지럽히지 않아야, 그러한 뒤에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충성과 신의를 주로 해야 한다.” 〈하시고〉, 주자가 그 말씀을 해석하여 말하길 “사람이 충성과 신의가 없으면 일에 모두 진실함이 없어서, 악을 행하기는 쉽고 선을 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충과 신〉을 학문에 주로 삼아야 한다.” 〈하였으니〉 반드시 충성과 신의로 주를 삼고 용감히 공부에 착수하여야 그러한 뒤에 성취한 바가 있을 수 있다. 황 면재(황간)가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라.”라는 두 마디 말이 그 뜻을 다하였도다.
109 五行 亦有相克之理하니 土克水하고 水克火하고 火克金하고 金克木하고 木克土하고 土復克水하니 乃操其相克之權하여 用其相生之物者 是人之功也니라 地篇이라 <啓蒙篇, 地篇>  
오행은 또한 상극의 이치가 있으니, 토는 수를 이기고, 수는 화를 이기고, 화는 금을 이기고, 금은 목을 이기고, 목은 토를 이기고, 토는 다시 수를 이기니, 이에 그 상극의 권세를 잡아 그 상생의 물건을 이용할 수 있음은 이것은 사람의 공이다. 오른쪽은 지편이다.
110 苟或交遊之際 不以切磋琢磨 爲相與하고 但以歡狎戱謔으로 爲相親이면 則安久而不疎乎리오 <童蒙先習, 朋友有信>  
만약 교유하는 사이에 절차탁마(切磋琢磨)로써 함께하지 않고, 다만 스스럼 없이 농담하는 것으로 가까이 지낸다면, 어찌 오래도록 〈서로에게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11 欲觀其人 行之善不善인대 必先觀其人之孝不孝 可不愼哉 可不懼哉孝於其親이면 則推之於君臣也 夫婦也 長幼也 朋友也 何往而不可哉리오 然則孝之於人 大矣로되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 <童蒙先習, 總論>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선한지 선하지 않은지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효도하지 않는지 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그 효도를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에 미루어 봄에, 어디에 대입한들 옳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효도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고원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112 曰 哀哀父母 生我劬勞라하니 父母之恩 爲如何哉 豈敢自有其身하여 以不盡孝於父母乎恒存此心이면 則自有向親之誠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그러므로 (《시경》에) 말하였다.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다. 부모의 은혜는 어떠함이 되는가? 어찌 감히 스스로 그 몸을 소유하여 그것으로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있을 것이다.
113 今之學者 外雖矜持 而內鮮篤實하여 夫婦之間 衽席之上 多縱情慾하여 失其威儀 夫婦不相昵狎而相敬者 甚少하니 如是而欲修身正家인들 不亦難乎 必須夫和而制以義하고 妻順而承以正하여 夫婦之間 不失禮敬然後 家事 可治也리라 若從前相狎이라가 而一朝 遽欲相敬이면 其勢難行이니 須是與妻相戒하여 必去前習하고 漸入於禮 可也니라 妻若見我發言持身 一出於正이면 則必漸相信而順從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지금의 학자들은 겉으로는 비록 몸을 조심하면서도 안으로는 독실한 자가 드물어서, 부부 (생략) 사이에 이부자리 (생략) 위에서 정욕을 내버려 두어 그 위의를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 친압하지 않으면서 서로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이와 같이 하면서 자신을 닦고 집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반드시(생략) 지아비는 온화하면서도 의로 제어하고 지어미는 유순하여 바름으로 받들어서 부부의 사이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은 연후에 집안의 일이 다스려질 수 있다. 만약 예전처럼 서로 친압하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로 공경하고자 한다면, 그 형세가 행해지기 어려우니, 반드시 이에 아내와 함께 서로 경계하여 반드시 이전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 예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내가 만약 내가 말을 하고 몸을 지키는 것이 한결같이 바름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면, (생략) 반드시 점차 서로 믿고 순종할 것이다.
114 君子憂道 不當憂貧이니 但家貧하여 無以資生이면 則雖當思救窮之策이나 亦只可免飢寒而已 不可存居積豊足之念이며 且不可以世間鄙事 留滯于心胸之間이니라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樵漁而活者 植杖而耘者하니 此等人 富貴不能動其心이라 安於此하니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이면 則豈不爲心術之害哉 學者 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이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115 今日之爲士者 不見爲親任勞 如古人者하고 只是科業一事 是親情之所欲이라하여 今旣不免做功하니 則科業 雖與理學不同이나 亦是坐而讀書作文이라 其便於躬耕行傭負米 不翅百倍 況有餘力하여 可讀性理之書哉 只是做科業者 例爲得失所動하여 心常躁競하여 反不若勞力之不害心術이라 先賢曰 不患妨功이요 惟患奪志라하니爲其事而不喪其守 則科業理學 可以竝行不悖矣리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오늘의 선비 된 자는 부모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맡아 하기를 옛 사람같은 자는 보지 못하였고, 다만 이 과거 공부 하나의 일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에 바라는 것이라 하여, 이제 이미 공부함을 면치 못한다. 그렇다면 과거공부가 비록 이학 공부와 같지 않으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이어서 그 몸소 밭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을 지는 것보다 편리함이 백 배일 뿐만이 아니다. 하물며 남은 힘이 있거든 성리의 책을 읽을 수 있음에랴?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으레 성공과 실패에 동요한 바 되어,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다투니, 도리어 힘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 마음을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이 “공부에 방해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뜻을 빼앗길까 걱정한다.” 하였다. 만약 그 일을 하면서도 그 지킴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곧 과거 공부와 이학 공부가 함께 행해지더라도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116 呂不韋賈邯鄲이라가 見而憐之曰 此奇貨可居라하고 乃往見子楚하여 說曰 吾大子之門이라하니 子楚笑曰 且自大君之門하고 而乃大吾門하라하다 呂不韋曰 子不知也 吾門待子門而大라하다 子楚心知所謂하고 乃引與坐하여 深語 <原文故事成語, 形勢>  
117 秦之間言曰 秦之所惡 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爲將耳라하다 趙王因以括爲將하여 代廉頗 藺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니이다 括徒讀其父書傳이요 不知合變也니이다하다 趙王不聽하고 遂將之 <原文故事成語, 愚鈍>  
118 楊布之狗 : 楊朱之弟楊布 衣素衣而出한대 天雨하여 解素衣하고 衣緇衣而反하니 其狗不知하고 而吠之 楊布怒하여 將擊之하니 楊朱曰 子毋擊也하라 子亦猶是로다 曩者使女狗白而往하여 黑而來 子豈毋怪哉리오하다 <原文故事成語, 愚鈍>  
119 朝三暮四: 宋有狙公者한대 愛狙하여 養之成群이라 解狙之意하고 狙亦得公之心이라 損其家口하여 充狙之欲이라 俄而匱焉하여 將限其食하니 恐衆狙之不馴於己也 <原文故事成語, 愚鈍>  
120 畵蛇添足: 楚有祠者 賜其舍人巵酒 舍人相謂曰 數人飮之하면 不足하고 一人飮之하면 有餘하니 請畵地爲蛇하여 先成者飮酒라하다 一人蛇先成하니 引酒且飮之라가 乃左手持巵하고 右手畵蛇曰 吾爲之足이라하다 <原文故事成語, 愚鈍>  
121 五里霧中: 性好道術하며 作五里霧 時關西人裴優爲三里霧한대 自以不如楷하여 從學之하나 楷避不肯見이라 桓帝卽位할새 優遂行霧作賊한대 事覺被考하니 引楷하여 言從學術이라하다 楷坐繫廷尉詔獄하여 積二年한대 恒諷誦經籍하며 作尙書注 後以事無驗하여 見原還家 建和三年 下詔하여 安車備禮聘之 辭以篤疾하고 不行이라 年七十 終於家 <原文故事成語, 愚鈍>  
122 猫項懸鈴: 群鼠會話曰 穿庾捿廩하면 生活可潤이나 但所怕 獨猫而已라하니 有一鼠言曰 猫項 若懸鈴子하면 庶得聞聲而遁死矣리라하다 群鼠喜躍曰 子言是矣 吾何所怕耶아하니 有大鼠徐言曰 是則是矣 然猫項爲我懸鈴耶아하니 群鼠愕然이라 <原文故事成語, 愚鈍>  
123 是時 諸侯多辯士한대 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呂不韋乃使其客으로 人人著所聞하여 集論하니 以爲八覽六論十二紀二十餘萬言이라 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하여 號曰 呂氏春秋 布咸陽市門하고 懸千金其上하고 延諸侯游士賓客하여增損一字者 予千金하리라하다 <原文故事成語, 才致>  
124 淮陰屠中少年 有侮信者하여 曰 若雖長大하고 好帶刀劍이라도 中情怯耳라하고 衆辱之曰 信 刺我하고 不能死 出我袴下하라하다 於是信孰視之라가 俛出袴下蒲伏하니 一市人皆笑信하며 以爲怯이라 <原文故事成語, 慾心>  
125 鴻聞而聘之 …… 遂至吳하여 依大家皐伯通하여 居廡下하며 爲人賃舂이라 每歸 妻爲具食하여 不敢於鴻前仰視하고 擧案齊眉 伯通察而異之曰 彼傭使其妻敬之如此하니 非凡人也라하고 乃方舍之於家 <原文故事成語, 慾心>  
126 雲曰 我雖使日月 失明하나 惟風吹散하니 彼居吾上乎로다하니 野鼠求之於風이라 風曰 我雖散雲이나 惟田間石佛 吹之不倒하니 彼居吾上이로다하니 野鼠求之於石佛이라 石佛曰 我雖不畏風이나 惟野鼠穿我足底 則傾倒하니 彼居吾上乎로다하니 野鼠於是傲然自得曰 天下之尊 莫我若也라하고 遂婚於野鼠 <原文故事成語, 慾心>  
127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 盡守 積書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 盡讀이니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하여 以爲子孫之計也니라 <原本明心寶鑑, 繼善篇第一 >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금을 모아서 자손(子孫)에게 남겨도, 반드시 자손이 다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책을 쌓아서 자손에게 남기더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둠의 속에서 남 모를 덕[陰德]을 쌓아서, 자손의 계책(計策)을 삼는 것만 같지 못하다.”
128 景行錄云 屈己者 處重하고 好勝者 必遇敵이니라 <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  
《경행록》에 말하였다. “자기를 굽히는 자는 중요한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적을 만난다.”
129 我身이면 譽及父母니라 我身不賢이면 辱及父母니라 <四字小學, 四字小學>  
내 몸이 어질 수 있으면, 명예가 부모에게 미치느니라. 내 몸이 어질지 못하면, 욕이 부모에게 미치느니라.
130 兄弟有難이어든 悶而思救하라如此 弟亦效之리라 <四字小學, 四字小學>  
형제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근심하고 도울 것을 생각하라. 형이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아우 또한 (그것을) 본받으리라.
131 莫非師恩이니라 總是師功이니라 <四字小學, 四字小學>  
효도할 수 있고 공경할 수 있음은 스승의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알 수 있고 실천 할 수 있음은 모두 스승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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