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삼강오상의 도가 세상과 더불어 시작과 끝을 함께하니, 하은주 삼대 이전에는 훌륭한 제왕과 명철한 군주, 어진 재상과 훌륭한 보좌가 함께 삼강오상을 강론하여 밝혔다. 그러므로,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적었는데, 삼대 이후에는 어리석은 군주와 어두운 군주, 어지럽히는 신하와 거역하는 자식이 함께 삼강오상을 무너뜨렸다. 그러므로, 어지러운 날은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은 항상 적었다. 그 세상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 편안함과 위태로움, 나라의 흥망과 존폐의 까닭이 모두 인륜의 밝음과 밝지 않음의 여하에서 말미암았을 뿐이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인은 나의 수고를 대신해 주니, 마땅히 은혜를 앞세우고 위엄을 뒤로 해야만 비로소 그들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대하는 것과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것은 그 이치가 하나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하인을 돌보지 않으면 하인이 흩어진다. 하인이 흩어지면 집안이 패망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이르는 것이다. 그 하인을 대할 적에 반드시 굶주리고 추위에 떨 것을 염려하여 옷과 음식을 공급해주어 알맞은 곳을 얻게 하고,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먼저 반드시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고치게 하고, 그들을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 비로소 회초리를 가하여, 비복의 마음으로 하여금 자기 주인의 회초리가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지,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그러한 뒤에 〈하인으로〉 하여금 마음을 바꾸고 〈부드러운〉 낯 빛으로 고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가르침: 추 땅의 맹가의 어머니는 맹모라고 불렀는데, 그 집이 묘지에 가까웠다. 맹자가 어렸을 때에, 노는 것이 묘지의 일이었는데, 이리저리 뛰며 축대를 쌓고 매장하는 것이었다. 맹모가 말하길, “여기는 내가 아들을 거처할 게 곳이 아니다.” 하고, 마침내 버리고 시장 곁으로 옮겼더니, 맹자의 놀이가 상인이 호객하여 물건을 파는 일이었다. 맹모가 또 말하길, “이곳은 내가 아들을 거처하게 할 곳이 아니다.” 하고, 다시 학교의 곁으로 집을 옮겼더니, 맹자의 놀이가 바로 제기를 진열하고 읍하고 사양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었다. 맹모가 말하길, “참으로 내 자식을 거처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하고는 마침내 그곳에 거처하였다.
자사자가 말하길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을 따르는 것[率性]을 도(道)라 이르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이른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명을 본받고 성인의 법을 따라서 이 책을 기술하여, 스승된 자로 하여금 가르칠 방법을 알게 하고, 제자〈로 하여금〉 배울 방법을 알〈게 하노라〉.
《예기(禮記)》에 말하였다. “효자 중에 깊은 사랑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운이 있고, 온화한 기운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는 얼굴빛이 있고, 기뻐하는 얼굴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용모가 있으니, 효자는 옥을 잡은 듯이 하고 가득찬 것을 받드는 듯이 하여, 성실하고 오롯하게 감당하지 못할 듯이 하고 장차 그것을 잃을 듯이 여기니,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며 엄연하고 씩씩한 것은 부모를 섬기는 방법이 아니다.”
15
祭統曰 夫祭也者는 必夫婦親之니所以備外內之官也니 官備則具備니라<小學, 明倫第二>
《예기》 〈제통〉에 말하였다. “무릇 제사라는 것은 반드시 남편과 아내가 그것을 직접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의 일을 갖추는 방법이니, 일이 갖추어지면 제물도 갖추어진다.
〈예기〉에 말하였다. 대저 혼인의 예는 만 세대의 시초이다. 이성과 혼인 하는 것은 거리를 가깝게 하며 분별됨을 두텁게 하는 것 이다. 폐백은 반드시 정성을 다하고, 말을 후하게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곧음과 믿음으로써 (그에게) 고하는 것이다. 믿음은 사람을 섬기는 방도이니, 믿음은 아내의 덕이다. 한 번 (그와) 함께 가지런히 하여 부부가 되면 몸이 다할 때까지 바꾸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편이 죽더라도 (다시) 시집가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여자는 안방문의 안에서 하루를 마치고, 백 리를 가서 초상에 달려가지 않으며, 일을 멋대로 함이 없고 행실을 혼자 이룸이 없어 참여하여 알게 된 뒤에 행동하고 증험할 수 있게 된 뒤에 말하며, 낮에는 마당을 다니지 않고 밤에는 횃불을 사용하여 (마당을) 다니니, 부인의 덕을 바르게 하는 방법이다.
맹가의 어머니는 그 집이 무덤과 가까웠는데, 맹자가 어려서 놀 때 무덤 사이의 일을 하여, 뛰며 봉축하고 매장하였다. 맹자의 어머니는 말하였다. “이곳은 이곳으로 자식을 살게 할 곳이 아니다.” 곧 떠나 시장에 거처하였는데, 그가 놀 때 장사꾼이 파는 (시늉을) 하자, 맹자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이곳은 이곳으로 자식을 살게 할 곳이 아니다.” 마침내 이사하여 학교의 곁에 거처하니, 그 놀 때 곧 제기를 늘어놓고, 읍하고 사양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시늉을) 하였다. 맹자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이곳은 참으로 이곳으로 자식을 살게 할 수 있다.” 마침내 이곳에 거처하였다.
위령공이 부인과 밤에 앉아있었는데, 들으니, 수레 소리가 덜커덩거리며 대궐(문)에 이르러 그쳤다가 대궐(문)을 지나 다시 소리가 났다. 공이 부인에게 물어 말하였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부인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거백옥이다.” 공이 말하였다. “무엇으로 아는가?” 부인이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예는 대궐문에서 내리며 (임금의) 수레를 끄는 말에 경례함은 이로써 공경을 넓히는 것이라 하니, 무릇 충성스러운 신하와 효성스러운 자식은 밝다 하여 절개를 펴지 않고, 어둡다 하여 행실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거백옥은 위나라의 어진 대부이다. 어질면서도 지혜가 있고, 윗사람을 섬김에 공경하니, 이는 그 사람이 반드시 어두움으로 예를 폐하지 않을 것이니 이 때문에 안다.” 공이 사람에게 살펴보게 하니, 과연 백옥이었다.
양이 또 몸에 옻칠하여 문둥이가 되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어 시장에 다니며 구걸하니, 그 아내는 알지 못했는데 그 벗은 (그를) 알고 (그를) 위해 울며 말하였다. “그대의 재주로 신하로 조맹을 섬기면 반드시 가까이하고 총애함을 얻을 것이니, 그대가 이에 하려는 것을 함이 도리어 쉽지 않겠는가? 어찌 마침내 스스로 고생하기를 이처럼 하는가?” 양이 말하였다. “폐백을 바쳐 신하가 되고서 (그를) 죽이기를 구한다면, 이는 두 마음이다. 내가 이로써 이것을 하는 바의 것은 장차 천하 후세의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관직을 맡아 일을 처리함에 다만 붙어서 성실함에 힘쓸 것이니, 예컨대 문자를 칠하고 긁어내며, 추후에 날과 달을 고치며, 거듭 수결로 한 글자를 고친 일이 만에 하나 실패하여 탄로 나면, 죄를 얻음이 도리어 무겁고, 또한 그것으로 성실한 마음을 길러 군주를 섬김에 속이지 않는 바의 도리가 아니다.
네 가지는 몸의 작용이다. 마음에 말미암아 밖에 응하니, 밖을 제어함은 그것으로 그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안연이 이 말에 종사했으니, 그것으로 성인에 나아간 것이다. 뒤의 성인을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가슴에 두어서 잃지 말아야 한다. 인하여 잠을 지어 그것으로 스스로 경계한다.”
27
顔氏家訓曰 夫所以讀書學問은 本欲開心明目하여 利於行耳니라<小學, 嘉言第五>
안씨가훈에 말하였다. “무릇 그것으로 책을 읽고 배우고 묻는 까닭은 본래 마음을 열고 눈을 밝혀 행함에 편리하게 하고자 해서일 뿐이다.
여형공이 어려서부터 벼슬을 맡은 곳에서 일찍이 남에게 천거를 구하지 않았다. 그 아들 순종이 회계 지역에 벼슬을 맡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혹 그가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롱하자, 순종이 대하여 말하기를 직책과 일에 부지런하고 그 나머지는 감히 삼가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것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방법이다.
도둑이 떠난 뒤에 집안 사람이 묻기를 “어찌 홀로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노씨가 말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그 인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웃과 마을에 위급함이 있더라도 오히려 서로 달려가 구제하는데 하물며 시어머니를 버릴 수 있음에 있어서야! 만약 만에 하나 위태롭거나 화를 당했다면 어찌 마땅히 홀로 살겠는가?”
어질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으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과실을 더하게 된다. 또 무릇 부유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원망을 받는다. 내가 이미 이로써 자손을 교화시키지 못했으니, 그 과실을 보태어서 원망을 낳고자 하지 않는다. 또 이 금은 성주께서 이로써 노신을 은혜롭게 길러주려는 바이다. 그러므로 즐겁게 마을 종족과 함께 그 은사를 누리면서 이로써 나의 남은 날을 다하려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장공예는 9대가 함께 지내니, 북제와 수나라, 당나라에서 모두 그의 문에 정표하였다. 인덕 연간에 고종이 태산에 봉제사를 지내고 그 집에 행차하여 공예를 불러 보고는 그가 이로써 종족을 화목하게 할 수 있는 바의 도를 물었다. 공예가 종이와 붓으로 대답겠다고 청하고는 마침내 ‘참을 인‘자 백여 번을 써서 올렸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종족이 화목하지 않은 까닭은 존장의 옷과 음식에 혹 고르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낮고 어린 사람의 예절이 혹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번갈아가며 서로 책망하여 마침내 어긋나고 다투게 되기 때문이니, 진실로 서로 더불어 (그것을) 참을 수 있다면 집안의 도가 화목할 것입니다.’
저 〈경신〉 한 편에 대해서는 참으로 긴요함과 절실함이 느껴진다. 대개 한 번 이를 논해보건데, 경(敬)이란 성인의 학문에서 시작을 이루고 끝을 이루며 위로 〈천리에〉 통하고 아래로 〈인사에〉 통하는 것이니, 공경과 나태의 사이에서 길흉이 즉시 판가름 된다. 그러므로 〈주나라〉 무왕(武王)이 즉위한 초기에 태사 여상(呂尙)이 간절히 경계의 말을 올린 것이 이 경(敬)에 지나지 않았으니,
33
子曰 不患無位요 患所以立하며 不患莫己知요 求爲可知也니라<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설 자격이 〈있는지를〉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하기를 구해야 한다.”
사람이 모두 남에게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만일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모두 두려워하고 측은해 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는 것이 아니며, 그것으로 향당과 벗들에게 명예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며,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제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백성의 군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시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이 천명을 계승하여 〈교육의〉 표준을 세운 까닭이요, 사도의 관직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이유였다.
그들이 열 하고 다섯 살이 되면 천자의 맏아들과 〈나머지〉 여러 아들부터 이하로 공·경·대부·원사의 적자와 모든 백성의 빼어난 자식까지 모두 태학에 입학시켜서, 그들에게 이치를 연구하고 마음을 바루며 자신을 수양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으니, 이것이 또한 학교의 가르침에 크고 작은 절목이 나누어진 까닭이다.
무릇 이 때문에 학교의 설치는 그 넓음이 이와 같았고, 그들을 가르치던 방법은 그 차례와 절목의 상세함이 또 이와 같았으되, 그 가르침을 삼는 방법은 또 모두 그것을 임금이 몸소 행하고 마음에서 얻은 나머지에 뿌리를 두었고, 그것을 백성이 일상생활하는 상도(常道)의 밖에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배우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 학교에서 배운 사람은 그 성품의 본래 가진 바와 직분의 당연히 할 바를 알 수 있어서 각각 제 본성과 직분에 힘써서 제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것이 옛날 〈하·은·주의〉 성대했던 시대에 정치가 위에서 융성하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워서, 후세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까닭이다.
41
子曰 不患無位요 患所以立하며 不患莫己知요 求爲可知也니라<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설 자격이 〈있는지를〉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하기를 구해야 한다.”
사람이 모두 남에게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만일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모두 두려워하고 측은해 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는 것이 아니며, 그것으로 향당과 벗들에게 명예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며,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맹자는〉 부득이하게 경추 씨(景丑氏)에게 가서 그 집에서 묵었는데,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서는 부자(父子)의 관계, 밖에서는 군신(君臣)의 관계가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 사이에는 은혜를 위주로 하고 군신 사이에는 공경을 위주로 합니다. 저(경추)는 왕이 그대를 공경하는 것은 보았고 〈그대가〉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를 왕과 말하는 자가 없는 것이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서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어찌 함께 인과 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해서일 뿐이니 그렇다면 〈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저(맹자)는 요순(堯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그것을 왕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 중에 나처럼 왕을 공경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46
齊人曰 所以爲蚳鼃則善矣어니와所以自爲則吾不知也로라<孟子, 公孫丑下>
제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맹자가〉 지와를 위해 〈충고한〉 것은 좋으나, 〈맹자〉 스스로 행동한 것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상(庠)과 서(序)와 학(學)과 교(校)를 설치하여 백성을 가르쳤는데, 상은 기른다는 것이고 교는 가르친다는 것이고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것〉입니다. 〈지방 학교를〉 하(夏)나라는 ‘교’라고 하고 은나라는 ‘서’라고 하고 주나라는 ‘상’이라 하고 〈도성의〉 ‘학’은 곧 삼대가 그 이름을 함께하니, 모두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륜이 위에서 밝아지면 서민은 아래에서 친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한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며 그의 신체를 수고롭게 하며 그 체구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여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거스르고 어지럽히니,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는 것에 〈힘을〉 더하려는 까닭이다.
52
存其心하여 養其性은所以事天也요<孟子, 盡心上>
그 마음을 보존하고 그 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53
殀壽에 不貳하여 修身以俟之는所以立命也니라<孟子, 盡心上>
요절하고 장수하는 것에 의심하지 않고 몸을 닦아서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은 명(命)을 세우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순임금이 깊은 산의 속에 거처할 적에 나무와 돌과 거처하며 사슴과 돼지와 노닐었으니, 그 깊은 산의 야인과 다른 것이 드물었는데, 그 하나의 선한 말을 듣고 하나의 선한 행실을 보게 되자 마치 양자강과 황하를 터놓은 듯하여 성대한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재계하여 깨끗이 하며 의복을 갖춰 입고서 예(禮)가 아니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몸을 닦는 방법이고, 참소하는 자를 물리치고 여색을 멀리하고 재물을 경시하고 덕을 중시하는 것은 현자를 권면하는 방법이고, 그의 자리를 높여주고 그의 녹을 많이 주고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함께하는 것은 친족을 친애하는 것을 권면하는 방법이고, 관리자를 많이 두어 부리는 것은 일을 맡겨서 대신을 권면하는 방법이고, 충성과 믿음으로 대하고 녹을 많이 주는 것은 선비를 권면하는 방법이고, 때에 맞춰 부리고 세금을 줄이는 것은 백성을 권면하는 방법이고, 매일 살피고 매달 시험하여 녹봉을 한 일에 맞추는 것은 온갖 장인을 권면하는 방법이고, 가는 사람을 전송하고 오는 사람을 맞이하며 잘하는 이를 가상히 여기고 능하지 못한 사람을 가엽게 여기는 것은 멀리서 온 사람을 감싸는 방법이고, 끊어진 대를 이어 주며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키며 어지러운 나라를 다스리고 위태로운 나라를 붙들어 주며 때로써 조회하고 빙문하며 보내는 하사품을 두텁게 하고 오는 공물을 줄이는 것은 제후를 품어주는 방법입니다.
《시경(詩經)》 〈유천지명(維天之命)〉에 이르길 “오직 하늘의 명이 아! 그윽하여 그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하늘이 하늘이 된 까닭을 말한 것이고, “아! 드러나지 않았는가? 문왕의 덕이 순수함이여.”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문왕〈의 시호[諡]〉가 문(文)이 된 까닭은 순수함이 또한 그치지 않아서 임을 말한 것이다.
그 경전(《서경》)에 나타난 것으로, “진실로 그 중(中)의 〈도를〉 지켜라.” 한 것은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전해 준 것이고,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隱微)하니, 오직 정밀히 〈살피고〉 오직 한결같이 〈지켜야〉 진실로 그 중의 〈도를〉 지킬 수 있다.” 한 것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해 준 것이다. 요임금의 한마디 말[允執厥中]이 〈이미〉 지극하고 〈할 말을〉 다했음에도, 순임금이 다시 거기에 세 마디 말[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을 더한 것은 곧 저 요임금의 한마디 말이 반드시 순의 말처럼 한 뒤에야 〈행해지길〉 바랄만 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 〈사사로운〉 형기를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또한, 이 〈바른〉 성명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어리석은 자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인심과 도심의〉 두 가지가 짧은 순간의 사이에 섞여있는데도 그것을 다스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위태한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공정한 천리가 끝내 저 사사로운 인욕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이때 이후로 성인과 성인이 서로 〈이 가르침을〉 계승하였으니, 성탕(成湯)·문왕(文王)·무왕(武王) 같은 군주와 고요(皐陶)·이윤(伊尹)·부열(傅說)·주공(周公)·소공(召公) 〈같은〉 신하가 이미 모두 이 〈16자를〉 써서 저 도통의 전승을 이으셨고, 우리 부자[孔子] 같은 분은 비록 그 지위를 얻지 못했으나 지난 성인을 계승하여 다가올 학자들을 열어 주신 것은 그 공이 도리어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대체로 자사의 근심이 깊었던 까닭에 중용의 말이 절실하였고, 자사의 염려가 심원했던 까닭에 중용이 설명이 자세하였으니, 중용에 이른 ‘천명·솔성’은 〈요순이 전수하던〉 ‘도심(道心)’을 이르고, 중용에 이른 ‘택선(擇善)·고집(固執)’은 ‘유정유일(惟精惟一)’을 이르고, 중용에 이른 ‘군자(君子)·시중(時中)’은 ‘윤집궐중(允執厥中)’을 이르니, 〈요·순에서 자사까지〉 세상이 떨어진 것이 천 여 해인데도 그 말이 다르지 않은 것이 마치 부절을 합한 것과 같았다. 이전 성인의 책을 두루 뽑아보니, 대체를 제시하여 깊은 뜻을 열어 보여주신 것이 중용과 같이 분명하고 또 극진한 것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삼왕의 정치는 도(道)에 근본하였고, 이제·삼왕의 도는 심(心)에 근본하였으니, 그 마음을 얻는다면 도와 정치를 진실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정일과 집중은 요임금·순임금·우임금이 서로 전수한 심법이고, 건중·건극은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서로 전수한 심법이다. ‘덕(德)·인(仁)·경(敬)·성(誠)’이 글자[言]는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이니, 모두 이 마음의 묘함을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