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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可 A
동의 : AB ; A ; A 得以 B ; A ; 可得 A ; A ; A ; A 可以 B ; A 足用 B ; A 足以 B ; A 不可 B ; A 不足以 B ; A ; 莫能 A ; A ; 不可 A ; 不能 A ; 不得 A ; 不足 A ; A 不可以 B ; 未可 ; 不可 A ; A 可也 ; A 可矣 ; A ; A 可以 B ; 可得而 A ; 得而 A ; 難得而 A ; 不得而 A ; A ; 須是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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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子曰 吾未見剛者로라 或對曰 申棖이니이다 子曰 棖也이어니이리오 <論語, 公冶長第五>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아직 강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신정(申棖)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신정은 욕심이 있으니 어찌 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2 子張 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호되 無喜色하며 三已之호되 無慍色하여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하니 何如하니잇고 子曰 忠矣니라 曰 仁矣乎잇가 曰 未知로라이리오 <論語, 公冶長第五>  
자장(子張)이 물었다.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이 세 차례 벼슬에 나가 영윤이 되었는데 기뻐하는 얼굴빛이 없었고, 세 차례 영윤을 그만두었으나 서운한 얼굴빛이 없었고, 옛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운 영윤에게 알렸으니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충성스럽다.” 〈자장이〉 말하였다. “인(仁)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알지 못하겠구나. 어찌 인(仁)이 될 수 있겠느냐?”
3 崔子弑齊君이어늘 陳文子有馬十乘이러니 棄而違之하고 至於他邦하여 則曰 猶吾大夫崔子也라하고 違之하며 之一邦하여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라하고 違之하니 何如하니잇고 子曰 淸矣니라 曰 仁矣乎잇가 曰 未知로라이리오 <論語, 公冶長第五>  
〈자장이 물었다.〉 “최자(崔子)가 제나라 임금을 시해하자, 말 10승을 소유한 〈대부〉 진문자(陳文子)가 그 말들을 버리고 떠나 다른 나라에 이르러서는 말하길, ‘〈이 나라도〉 우리(제나라) 대부 최자와 같은 자가 〈있〉다.’ 하고, 그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는 또 말하길 ‘〈이 나라도〉 우리 대부 최자와 같은 자가 〈있〉다.’ 하고, 〈다시〉 그 나라를 떠났으니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깨끗하다.” 〈자장이〉 말하였다. “어집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알지 못하겠네. 어찌 어질다고 할 수 있겠는가?”
4 子曰 聖人 吾不而見之矣어든 得見君子者 斯可矣니라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성인을 내 얻어서 (그를) 볼 없다면 군자인 사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이에 괜찮다.
5 天之將喪斯文也신댄 後死者 不與於斯文也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시니 匡人 其如予何리오 <論語, 子罕第九>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 했다면, 뒤에 죽는 사람이 이 문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아직 이 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시니 광 땅의 사람들이 장차 나를 어찌 하겠는가?”
6 曰 其言也訒이면 斯謂之仁矣乎잇가 子曰 爲之難하니 言之 無訒乎 <論語, 顔淵第十二>  
(사마우가) 말하였다. “그 말하는 것을 참아서 하면, (그것을) 인이라고 이르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그것을 하는 것이 어려우니 (그것을) 말함에 참아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7 孔子曰 里仁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리오하시니 夫仁 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어늘 莫之禦而不仁하니 不智也니라 <孟子, 公孫丑上>  
공자께서 말하길, ‘마을의 〈풍속이〉 인후한 것을 아름답게 여긴다. 〈살 곳을〉 고르면서 인후한 곳에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시니, 무릇 인(仁)은 하늘의 높은 벼슬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 그것을 막지 않는데도 인후한 마을을 〈고르지〉 않으니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8 曰 豈謂是與리오 曾子曰 晉楚之富 不可及也 彼以其富어든 我以吾仁이요 彼以其爵이어든 我以吾義 吾何慊乎哉리오하시니 夫豈不義 而曾子言之시리오 是或一道也니라 天下 有達尊이니 爵一齒一德一이니 朝廷 莫如爵이요 鄕黨 莫如齒 輔世長民 莫如德이니有其一하여 以慢其二哉리오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말하였다. “어찌 이것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증자가 말하길,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부유함은 미칠 수 없으나 저들이 자기의 부를 쓰면 나는 나의 인을 쓰고 저들이 자기의 벼슬을 쓰면 나는 나의 의를 쓸 것이니, 내가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하셨으니, 무릇 어찌 의롭지 않은 것인데 증자가 이렇게 말하였겠습니까? 이것도 하나의 도리입니다. 천하에서 공통으로 존중하는 것 셋이 있으니, 관작(官爵)이 하나이고 나이가 하나이고 덕(德)이 하나입니다. 조정에는 관작만 한 것이 없고, 고을에는 나이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에는 덕만 한 것이 없으니, 어찌 그 하나를 소유하고서 그 둘을 〈가진 사람을〉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9 然則子之失伍也亦多矣로다 凶年饑歲 子之民 老羸 轉於溝壑하고 壯者 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 曰 此 非距心之所爲也니이다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가 대오(隊伍)를 이탈한 것이 또한 많습니다. 흉년으로 굶주린 해에 그대의 백성 중에 늙고 쇠약한 자는 도랑이나 골짜기에 〈시체로〉 나뒹굴고 장성한 사람은 흩어져서 사방으로 간 자가 몇천 명입니까?” 〈공거심이〉 말하였다. “이것은 제(거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0 就見孟子曰 前日 願見而不可得이라가 得侍하여는 同朝甚喜러니 今又棄寡人而歸하시니 不識케이다 可以繼此而見乎잇가 對曰 不敢請耳언정 固所願也니이다 <孟子, 公孫丑下>  
왕이 맹자를 찾아가 말하였다. “전날에 만나길 원해도 할 수 없다가, 모실 수 있어서 조정에 함께하는 자들이 매우 기뻤습니다.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니 알지 못하겠으나, 이번을 이어서 만날 기회를 얻을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감히 청하지 못할 뿐이지 진실로 바라는 바입니다.”
11 曰 非也 於崇見王하고 退而有去志하니 不欲變이라 不受也로라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네. 숭(崇) 땅에서 내가 왕을 만날 기회를 었었고 물러나면서 떠날 뜻이 있었으니, 〈이 뜻을〉 바꾸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녹을〉 받지 않았다네.
12 陳相 見許行而大悅하여 盡棄其學而學焉이러니 陳相 見孟子하여 道許行之言曰 滕君則誠賢君也어니와 雖然이나 未聞道也로다 賢者 與民竝耕而食하며 饔飱而治하나니 今也 滕有倉廩府庫하니 則是厲民而以自養也이리오 <孟子, 滕文公上>  
진상이 허행을 만나고서 크게 기뻐하여 자신의 학문을 모두 버리고서 허행에게 배우더니, 진상이 맹자를 만나 허행의 말을 전하여 말하였다. “등나라 임금(문공)은 진실로 어진 임금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아직 도를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현자(賢者)는 백성과 함께 나란히 밭을 갈아서 먹으며, 아침과 저녁밥을 하면서 다스립니다. 지금에 등나라는 곡식 창고와 재화 창고가 있으니, 곧 이것은 백성을 괴롭혀서 그것으로 자신을 봉양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질 수 있겠습니까?”
13 當堯之時하여 天下猶未平하여 洪水橫流하여 氾濫於天下하여 草木暢茂하며 禽獸繁殖이라 五穀不登하며 禽獸偪人하여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이어늘 堯獨憂之하사 擧舜而敷治焉이어시늘 使益掌火하신대 烈山澤以焚之하니 禽獸逃匿이어늘 禹疏九河하며 瀹濟漯而注諸海하시며 決汝漢하며 排淮泗而注之江하시니 然後 中國 可得而食也하니 當是時也하여 禹八年於外 三過其門而不入하시니 雖欲耕이나 <孟子, 滕文公上>  
요(堯)임금의 때가 되어서는 천하가 여전히 안정되지 못하여 홍수가 제멋대로 흘러 천하에 범람하여 초목이 매우 무성해지며 금수가 번성하여 자랐다네. 오곡이 익지 않으며 금수가 사람을 핍박하여 짐승의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이 난 길이 나라 안에 교차하거늘 요임금이 홀로 이것을 근심하여 순(舜)을 등용하여 여기에 다스림을 펼쳤네. 순임금이 익에게 불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익(益)이 산택에 불을 놓아서 초목을 태우니, 금수가 도망가서 숨었네. 우(禹)가 황하의 아홉 지류를 텄으며, 제수(濟水)와 탑수(漯水)를 터서 바다에 흘려보내고, 여수(汝水)와 한수(漢水)를 트고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를 터서 강에 그것을 흘려보내니, 그러한 뒤에 나라가 〈곡식을〉 얻어서 먹을 수 있었네. 이때가 되어 우가 집 밖에서 8년에 세 번 자기 집 문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비록 〈직접〉 농사를 짓고자 하더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14 孟子曰 是焉爲大丈夫乎리오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하고 女子之嫁也 母命之하나니 送之門할새 戒之曰 往之女家하여 必敬必戒하여 無違夫子라하나니 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니라 <孟子, 滕文公下>  
맹자가 말하였다. “이들을 어찌 대장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장부의 관례에 아버지가 장부를 가르치고 여자의 가례에 어머니가 딸을 가르칩니다. 〈여자가 시집을〉 갈 때에 문에서 딸을 전송하며 딸에게 경계하여 말하길, ‘너의 집에 가서는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하여 남편의 〈뜻을〉 어기지 말라.’ 하였으니, 순종을 바른 도로 여기는 것이 아내의 도리입니다.
15 陽貨欲見孔子而惡無禮하여 大夫有賜於士어든受於其家 則往拜其門일새 陽貨矙孔子之亡也하여 而饋孔子蒸豚한대 孔子亦矙其亡也하여 而往拜之하시니 當是時하여 陽貨先이면不見이시리오 <孟子, 滕文公下>  
양화(陽貨)는 〈먼저 찾아와 준〉 공자와 만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찾지 않아〉 무례하다는 〈평은 듣기〉 싫어했네. 〈예(禮)에 이르길〉 ‘대부가 사(士)에게 하사한 것이 있는데 〈사가〉 자신의 집에서 받을 수 없다면 대부의 문에 가서 절한다.’ 하였으니, 양화는 〈일부러〉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서 공자에게 삶은 새끼돼지를 보냈는데, 공자 역시 양화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서 양화의 대문에 가서 절하였다네. 그 당시에 양화가 〈예를〉 먼저 갖췄다면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16 孟子曰 恭者 不侮人하고 儉者 不奪人하나니 侮奪人之君 惟恐不順焉이어니爲恭儉이리오 恭儉 豈可以聲音笑貌爲哉리오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공손한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검소한 사람은 남에게서 빼앗지 않으니, 남에게서 업신여기고 빼앗는 임금은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니, 어찌 공손함과 검소함을 할 수 있겠는가? 공손함과 검소함이 어찌 목소리와 웃는 모습으로 될 수 있는 것이겠는가?
17 予未爲孔子徒也 私淑諸人也로라 <孟子, 離婁下>  
나는 공자(孔子)의 문도(門徒)가 될 수 없었으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공자를 사숙하였다.”
18 逄蒙 學射於羿하여 盡羿之道하고 思天下 惟羿爲愈己라하여 於是 殺羿한대 孟子曰 是亦羿有罪焉이니라 公明儀曰 宜若無罪焉하니이다 曰 薄乎云爾언정無罪리오 <孟子, 離婁下>  
방몽(逄蒙)이 예[后羿]에게 활쏘기를 배웠는데, 예의 기술을 다 배우고 ‘천하에 오직 예만이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예를 죽여버렸다. 맹자가 〈이 일을 평하여〉 말하였다. “이 일도 예에게 죄가 있다. 공명의(公明儀)가 이르길 ‘당연히 죄가 없는 듯하다.’ 했지만, ‘〈죄가〉 적다.’ 할 뿐,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는가?
19 夫章子 豈不欲有夫妻子母之屬哉리오마는 爲得罪於父하여이라 出妻屛子하여 終身不養焉하니 其設心 以爲不若是 是則罪之大者라하니 是則章子已矣니라 <孟子, 離婁下>  
저 장자(章子)가 어찌 남편과 아내, 자식과 어미의 가족을 가지고자 하지 않았겠는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기 때문에 가까이할 수 없었네. 아내를 내보내고 자식을 물리쳐서 생을 마치도록 그들에게 봉양 받지 않았으니, 그가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처럼 하지 않으면 이는 죄 중에 큰 것이다.’라고 여겼으니, 이런 사람이 곧 장자라네.”
20 萬章曰 父母愛之어시든 喜而不忘하고 父母惡之어시든 勞而不怨이니 然則舜 怨乎잇가 曰 長息 問於公明高曰 舜 往于田 則吾旣聞命矣어니와 號泣于旻天 于父母 則吾不知也로이다 公明高曰 是 非爾所知也라하니 夫公明高 以孝子之心 爲不若是恝이라 我竭力耕田하여 共爲子職而已矣 父母之不我愛 於我 何哉오하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은〉 기뻐하고 잊지 말아야 하고,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면 〈자식은〉 노력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다면 순은 〈부모를〉 원망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식이 〈스승인〉 공명고에게 물어 말하길 ‘순이 밭에 간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하늘과 부모에 부르짖으며 운 것은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공명고가 말하길, ‘그것은 네(장식)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저 공명고(公明高)는 효자의 마음을 다음처럼 무관심하진 않다고 여겼다네.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아 공손히 자식의 직분을 할 뿐이니,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떠하겠는가?’라고….
21 萬章 問曰 詩云 娶妻如之何 必告父母라하니 信斯言也인댄 宜莫如舜이니 舜之不告而娶 何也잇고 孟子曰 告則不하시리니 男女居室 人之大倫也 如告則廢人之大倫하여 以懟父母 是以 不告也시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萬章)이 물어 말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길, ‘아내를 맞이하는 것을 어찌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한다.’ 하니,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순(舜)처럼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순이 고하지 않고서 장가든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고했다면 장가들 수 없었다네. 남녀가 한 집에 사는 것은 사람의 큰 윤리이니, 만약 고했다면 사람의 큰 인륜을 폐지하여 부모를 원망하였을 것이네. 이 때문에 고하지 않은 것이네.”
22 敢問 或曰放者 何謂也잇고 曰 象有爲於其國하고 天子使吏 治其國而納其貢稅焉이라 謂之放이니暴彼民哉리오 雖然이나 欲常常而見之 源源而來하니 不及貢하여 以政接于有庳라하니 此之謂也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감히 묻겠습니다. 혹자가 〈순이 상을〉 추방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상은 그 나라(유비)를 다스리는 일이 있을 수 없었고, 천자가 관리에게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천자에게 그 공물을 바치게 하였다네. 그러므로 그 일을 추방했다고 이른 것이니, 〈상이〉 어찌 저 백성들에게 포악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순임금은〉 항상 상을 만나고자 하였다네. 그러므로 끊임 없이 오게 하였으니, ‘조공할 〈때에〉 이르지 않아 정사로써 유비의 군주를 접견했다.’ 하니, 이것을 이른 것이라네.”
23 咸丘蒙曰 舜之不臣堯 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 詩云 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이라하니 而舜 旣爲天子矣시니 敢問瞽瞍之非臣 如何잇고 曰 是詩也 非是之謂也 勞於王事而不養父母也하여 曰 此莫非王事어늘 我獨賢勞也라하니 說詩者 不以文害辭하며 不以辭害志 以意逆志라야 是爲得之 如以辭而已矣인댄 雲漢之詩曰 周餘黎民 靡有孑遺라하니 信斯言也인댄 周無遺民也니라 <孟子, 萬章上>  
함구몽이 말하였다. “순임금이 요임금을 신하로 삼지 않은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얻어 들었습니다만, 《시경》 〈북산(北山)〉에 이르길, ‘온 하늘의 아래가 왕의 땅 아님이 없으며, 온 땅의 변경이 왕의 신하 아닌 이가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었는데, 고수를 신하로 삼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감히 묻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 시는 그것을 이른 것이 아니다. 〈순임금이〉 왕의 일에 수고로워서 부모를 봉양할 수 없어서, ‘이것은 왕의 일이 아닌 것이 없는데 나 홀로 어질다하여 수고롭구나.’ 라고 〈탄식하여〉 말한 것이네. 그러므로 시를 설명하는 자는 한 글자로써 어구를 해쳐서는 안되며, 한 어구로써 〈시의〉 뜻을 해쳐서는 안되고, 〈자신의〉 마음으로 〈작자의〉 뜻을 헤아려야 바로 의미를 얻게 된다네. 만일 어구로써 〈볼〉 뿐 이라면 〈운한〉이라는 시에 ‘주나라의 남은 백성은 남은 자가 없구나’ 하였으니, 진실로 이 말대로 〈해석한〉다면, 이는 ‘주나라에 〈한 사람도〉 남은 백성이 없다.’ 〈한 뜻이 된다네.〉
24 且君之欲見之也 何爲也哉 曰 爲其多聞也 爲其賢也니이다 曰 爲其多聞也인댄 則天子 不召師 而況諸侯乎 爲其賢也인댄 則吾未聞欲見賢而召之也로라 繆公 亟見於子思하고 曰 古 千乘之國 以友士하니 何如하니잇고 子思不悅曰 古之人 有言曰 事之云乎언정 豈曰友之云乎리오하시니 子思之不悅也 豈不曰 以位則子 君也 臣也 何敢與君友也 以德則子 事我者也 奚可以與我友리오 千乘之君 求與之友로되 而不可 而況可召與 <孟子, 萬章下>  
또 임금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장이〉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며, 그가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가 견문이 많기 때문이라면 천자도 스승을 부르지 않는데, 하물며 제후가 〈그를 부르〉겠는가?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어진이를 만나고자 하여 어진이를 부르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하였다네. 목공이 자사를 자주 만나서 말하길, ‘옛날에 천승의 나라를 〈가진 군주〉로서 선비와 벗하였으니, 어떠합니까?’ 하자, 자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길, ‘옛사람이 말에 이르길, 「그를 섬겼다고 말할지언정 어찌 그와 벗하였다 말하겠습니까?」’ 하였으니, 자사가 기뻐하지 않은 것은 어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위로는 그대는 임금이고 나는 신하이니, 어찌 감히 임금과 벗하겠습니까? 덕으로는 그대는 나를 섬기는 자이니, 어찌 나와 벗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천승의 임금도 자사와 벗하기를 구해서 얻을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함부로〉 부를 수 있겠는가?
25 曰 交見於鄒君이면 可以假館이니 願留而受業於門하노이다 <孟子, 告子下>  
〈조교가〉 말하였다. “제가 추나라 임금을 뵙게 되면 관사를 빌릴 수 있으니, 머무르면서 문하에서 학업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26 屋廬子悅이어늘 或問之한대 屋廬子曰 季子 不得之鄒 儲子 之平陸일새니라 <孟子, 告子下>  
옥려자가 기뻐하자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옥려자가 말하였다. “계자는 추 땅에 갈 수 없었고 저자는 평륙에 갈 수 있었습니다.”
27 又漆身爲癩하고 呑炭爲啞하여 行乞於市하니 其妻 不識也로되 其友識之하고 爲之泣曰 以子之才 臣事趙孟이면近幸하리니 子乃爲所欲爲 顧不易邪 何乃自苦如此 讓曰 委質爲臣이요 而求殺之 二心也 吾所以爲此者 將以愧天下後世之爲人臣而懷二心者也하노라 <小學, 稽古第四>  
양이 또 몸에 옻칠하여 문둥이가 되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어 시장에 다니며 구걸하니, 그 아내는 알지 못했는데 그 벗은 (그를) 알고 (그를) 위해 울며 말하였다. “그대의 재주로 신하로 조맹을 섬기면 반드시 가까이하고 총애함을 얻을 것이니, 그대가 이에 하려는 것을 함이 도리어 쉽지 않겠는가? 어찌 마침내 스스로 고생하기를 이처럼 하는가?” 양이 말하였다. “폐백을 바쳐 신하가 되고서 (그를) 죽이기를 구한다면, 이는 두 마음이다. 내가 이로써 이것을 하는 바의 것은 장차 천하 후세의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28 蔡人妻 宋人之女也 旣嫁而夫有惡疾이어늘 其母將改嫁之러니 女曰 夫之不幸 乃妾之不幸也 奈何去之리오 適人之道 一與之醮하면 終身不改하나니 不幸遇惡疾하나 彼無大故하고 又不遣妾하니 何以리오하고 終不聽하니라 <小學, 稽古第四>  
채나라 사람의 아내는 송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이미 시집갔는데 남편에게 나쁜 병이 있으므로 그 어머니가 개가시키려 하자, 딸이 말하였다. “남편의 불행은 바로 저의 불행이니, 어찌하여 떠나겠는가? 남에게 시집가는 도는 한 번 () 와 초례하면 몸을 마치도록 고치지 않는다. 운이 없어 나쁜 병을 만났으나, 저 사람에게 큰 연고가 없고, 또 저를 보내지 않으니, 무엇으로 떠날 수 있겠는가?” 끝내 듣지 않았다.
29 柳開仲塗曰 皇考治家하시되 孝且嚴이러시니 旦望 弟婦等 拜堂下畢하고 卽上手低面하여 聽我皇考訓誡하더니 曰 人家兄弟無不義者언마는 盡因娶婦入門하여 異姓 相聚하여 爭長競短하여 漸漬日聞하며 偏愛私藏하여 以致背戾하여 分門割戶하여 患若賊讐하나니 皆汝婦人所作이니라 男子剛腸者幾人 能不爲婦人言所惑 吾見 多矣 若等 寧有是耶리오하여시든 退則惴惴하여 不敢出一語爲不孝事하니 開輩抵此賴之하여 全其家云이로라 <小學, 嘉言第五>  
유개 중도가 말하였다. “선친이 집안을 다스리되 효성스럽고 또 엄격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자제와 며느리 무리가 대청 아래에서 절하고서 마치고는 곧 손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서 우리 선친의 가르침과 훈계를 들었는데 말하였다. ‘사람의 집에 형과 동생이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모두 아내를 맞이하여 집안에 들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고 단점을 다투어 점차 (참소가) 젖어 들고 날로 (참소가) 들리며,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저축하여 그것으로 등지고 어긋남에 이르러 집안을 나누고 집안을 쪼개어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처럼 여기니, 모두 너희 부인 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남자로서 심장이 강한 사람 몇 사람이 부인 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는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본 것이 많으니, 너희들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제와 며느리가) 물러나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효성스럽지 않은 일 함을 한 마디도 내지 못하니, 유개 무리가 지금에 이르도록 (그것에) 힘입어 그 집안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30 童蒙訓曰 同僚之契 交承之分 有兄弟之義하니 至其子孫하여 亦世講之하니 前輩 專以此爲務하더니 今人 知之者蓋少矣니라 又如舊擧將嘗爲舊任按察官者 己官 雖在上이나 前輩皆辭避하여 坐下坐하니 風俗 如此不厚乎리오 <小學, 嘉言第五>  
동몽훈에 말하였다. “함께 하는 동료의 합함과 교대하여 잇는 즈음은 형과 동생의 의리가 있으니, 그 자식과 손자에 이르러서도 또한 대대로 (그것을) 강해야 한다. 전의 무리는 오로지 이것으로 일삼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대개 적다. 또 옛날에 추천해준 장수 및 일찍이 옛날에 안찰관을 맡아 된 이와 같은 경우는 뒤에 자기의 관직이 비록 (그들보다) 위에 있더라도 전의 무리에 대해 모두 사양하고 회피하여 아래 자리에 앉았으니, 풍속이 이와 같으면 어찌 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1 吾吳中宗族 甚衆하니 於吾 固有親疎어니와 然吾祖宗視之 則均是子孫이니 固無親疎也 苟祖宗之意 無親疎 則饑寒者 吾安不恤也리오 自祖宗來 積德百餘年而始發於吾하여 至大官하니 若獨享富貴而不恤宗族이면 異日 何以見祖宗於地下 今何顔入家廟乎리오 於是 恩例俸賜 常均於族人하고 幷置義田宅云하니라 <小學, 嘉言第五>  
내가 있는 오지방 가운데 종족이 매우 많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가깝고 멂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 조상이 (그를) 보면 똑같은 이 자식과 손자이니, 본래 가깝고 멂이 없다. 진실로 조상의 뜻에 가깝고 멂이 없다면, 굶주리고 추워하는 사람을 내 어찌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상으로부터 이래로 덕을 쌓은 지 백여 년만에 비로소 나에게서 발하여 큰 벼슬에 이를 수 있었으니, 만약 홀로 부유함과 귀함을 누리고 종족을 구제하지 않으면 다른 날에 어떻게 그것으로 지하에서 조상을 볼 수 있겠으며, 이제 무슨 낯으로 집안의 사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에 은혜로운 대우와 녹봉과 하사받은 것을 항상 집안사람들에게 고루 주고 아울러 의로운 밭과 집을 설치하였다.
32 行步出入入茶肆酒肆하며 市井里巷之語 鄭衛之音 未嘗一經於耳하며 不正之書 非禮之色 未嘗一接於目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행보하며 출입함에 다방과 주막에 들어가지 않으며 시정과 마을의 (속된) 말과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일찍이 한 번도 귀에 거친 적이 없으며, 바르지 않은 글과 예가 아닌 색을 일찍이 한 번도 눈에 접한 적이 없다.
33 江革 少失父하고 獨與母居러니 遭天下亂하여 盜賊 並起어늘 負母逃難하여 備經險阻하여 常採拾以爲養하더니 數遇賊하여 或劫欲將去어든 輒涕泣求哀하여 言有老母라하여 辭氣愿款하여 有足感動人者 以是不忍犯之하며或乃指避兵之方하니俱全於難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강혁이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다만 (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천하의 난리를 만나 도적이 함께 일어나자 강혁은 어머니를 업고 난리를 피하였다. 험난함을 모두 겪으면서 항상 캐고 주워서 봉양하였다. 자주 도적을 만났는데 혹 협박하며 장차 (강혁을) 데려가려고 하면, 강혁이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가엽게 여겨주기를 바라면서 늙으신 어머니가 있다고 말하였는데, 말소리가 정성스럽고 간곡하여서 충분히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도적은 이 때문에 차마 (그를) 범하지 못하였으며, 혹은 바로 병난을 피할 방법을 가리켜 보였다. 마침내 난리에서 모두 온전할 수 있었다.
34 一日 疾病이어늘 長幼咸萃러니 宣言無以報新婦恩이로소니 願新婦 有子有孫如新婦 孝敬하노니 則崔之門不昌大乎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하루는 심하여 (장손부인의) 병이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였는데, (장손부인이) 선언하기를 “이로써 신부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다. 신부는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으니, 모두 신부처럼 효도하고 공경할 수 있기를 바라노니, 곧 최씨의 집안이 어찌 번창하고 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35 司馬溫公 與其兄伯康으로 友愛尤篤이러니 伯康 年將八十이라 奉之如嚴父하며 保之如嬰兒하여 每食少頃이면 則問曰 無饑乎아하며 少冷이면 則拊其背曰 衣無薄乎아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사마온공은 그 형 백강과 우애가 특별히 돈독하였다. 백강이 나이가 장차 80이 되려는데, 온공이 (그를) 엄한 아버지처럼 받들었고 (그를) 어린아이처럼 돌보아서 매양 밥을 먹고 조금 지나서 곧 물어 말하기를 “배고픔이 없습니까? 하고 날씨가 조금 추워지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옷이 얇지는 않습니까?
36 兄弟 同受父母遺體하여 與我如一身하니 視之 當無彼我之間하여 飮食衣服有無 皆當共之니라 設使兄飢而弟飽하고 弟寒而兄溫이면 則是一身之中 肢體或病或健也 身心偏安乎 今人 兄弟不相愛者 皆緣不愛父母故也 若有愛父母之心이면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 兄弟 若有不善之行이면 則當積誠忠諫하여 漸喩以理하여 期於感悟 不可遽加 厲色拂言하여 以失其和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형제는 부모가 남겨준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는 한 몸과 같다. (그를) 볼 때 마땅히 서로의 간격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이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생략) 함께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으나 동생은 배부르고, 동생은 추우나 형은 따뜻하다면 곧 이는 한 몸의 가운데 지체가 혹 병들고 혹 건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생략) 때문이다. 만약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생략)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약 좋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생략) 마땅히 정성을 쌓아 진실스럽게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서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기를 기약해야 하니, 대뜸 사나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가하여서 그 부드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37 客有善爲狗盜者하여 入秦藏中하여 盜狐白裘以獻姬 姬乃爲之言於王而遣之러니 王後悔하여 使追之하다 孟嘗君至關하니 關法 鷄鳴이라야 而出客이라 時尙早하고 追者將至러니 客有善爲鷄鳴者하여 野鷄聞之하고 皆鳴이어늘 孟嘗君乃脫歸하다 <原文故事成語, 處世>  
38 猫項懸鈴: 群鼠會話曰 穿庾捿廩하면 生活可潤이나 但所怕 獨猫而已라하니 有一鼠言曰 猫項 若懸鈴子하면聞聲而遁死矣리라하다 群鼠喜躍曰 子言是矣 吾何所怕耶아하니 有大鼠徐言曰 是則是矣 然猫項 誰能爲我懸鈴耶아하니 群鼠愕然이라 <原文故事成語, 愚鈍>  
39 咸興差使: 芳碩變後 太祖棄位하고 奔于咸興하니 太宗屢遣中使하여 問安이라 太祖輒彎弓而待之하니 前後相望之使 未敢道達其情이라 時問安使 無一還者하니 太宗問群臣誰可遣이나 莫有應之者 判承樞府事朴淳 挺身請行이라 <原文故事成語, 才致>  
40 忍且忍하고 戒且戒하라 不忍不戒 小事成大니라 <原本明心寶鑑, 戒性篇第八 >  
참을 수 있으면 우선 참고, 경계할 수 있으면 우선 경계하라. 참지 않고 경계하지 않으면 작은 일이 큰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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