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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可 A
동의 : AB ; A ; A 得以 B ; A ; 可得 A ; A ; A ; A 可以 B ; A 足用 B ; A 足以 B ; A 不可 B ; A 不足以 B ; A ; 莫能 A ; A ; 不可 A ; 不能 A ; 不得 A ; 不足 A ; A 不可以 B ; 未可 ; 不可 A ; A 可也 ; A 可矣 ; A ; A 可以 B ; 可得而 A ; 得而 A ; 難得而 A ; 不得而 A ; A ; 須是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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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인저하시니 無情 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이니라 <大學, 大學 傳>  
공자가 말하길, “송사를 듣고 판결함이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백성에게〉 송사가 없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진실하지 않는 자가 〈터무니 없는〉 제 말을 다할 수 없음은 〈명덕으로〉 크게 백성의 마음을 두려워하게 해서이니,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2 所謂修身 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하며 有所恐懼 則不得其正하며 有所好樂 則不得其正하며 有所憂患이면其正이니라 <大學, 大學 傳>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화나는 바가 있으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면두려운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3 子曰 回也 視予猶父也어늘 視猶子也호니 非我也 夫二三子也니라 <論語, 先進第十一>  
공자가 말하였다. “안회는 나를 아버지와 같이 여겼는데, 나는 아들과 같이 여길 수 없었으니, 나 때문이 아니다. 무릇 저들 때문이다.
4 孔子下하사 欲與之言이러시니 趨而辟之하니 與之言하시다 <論語, 微子第十八>  
공자가 내려와 () 와 함께 말하고자 하였는데, (접여가) 빨리 걸어서 (그를) 피하니 () 와 함께 말할 수 없었다.
5 彼奪其民時하여 使耕耨하여 以養其父母하면 父母凍餓하며 兄弟妻子離散하리니 <孟子, 梁惠王上>  
저들이 제 백성의 농사 시기를 빼앗아 그들로 하여금 밭 갈고 김매어서 제 부모를 봉양할 수 없게 한다면, 부모는 얼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는 헤어져 흩어질 것이니,
6 孟子對曰 昔者 大王 居邠하실새 狄人 侵之어늘하시고 之岐山之下하사 居焉하시니 非擇而取之 已也시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邠) 땅에 거주할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입하였는데, 〈빈 땅을〉 떠나서 기산(岐山)의 아래로 가서 그곳에 거주하셨는데, 그곳을 골라서 취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해서였습니다.
7 滕文公 問曰 滕 小國也 竭力以事大國이라도免焉이로소니 如之何則可잇고 孟子對曰 昔者 大王 居邠하실새 狄人 侵之어늘 事之以皮幣라도 免焉하며 事之以犬馬라도 免焉하며 事之以珠玉이라도 免焉하여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 吾土地也 吾聞之也호니 君子 不以其所以養人者 害人이라하니 二三子 何患乎無君이리오 我將去之호리라하시고 去邠하시고 踰梁山하사 邑于岐山之下하여 居焉하신대 邠人曰 仁人也 不可失也라하고 從之者如歸市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물어 말하였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기더라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 땅에 살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략하자, 가죽과 비단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개와 말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주옥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 기로(耆老)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길, ‘적인이 원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내 이에 관하여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 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가? 나는 장차 빈 땅을 떠나겠소.’ 하고 빈 땅을 떠나 양산(耆老)을 넘어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여 그곳에 거주하셨습니다. 빈땅 사람들이 말하길, ‘어진 사람이다. 잃어서는 안된다.’ 하고 태왕을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모이는 듯 〈많았습니다〉.
8 이란 不可以爲悅이며 無財 不可以爲悅이니 得之爲有財하여는 古之人 皆用之하니 吾何爲獨不然이리오 <孟子, 公孫丑下>  
〈법제에〉 할 수 없는 것이면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없으며, 〈마련할〉 재력이 없으면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없네. 〈법제에〉 관곽을 할 수 있고 재력도 있으면 옛날의 사람이 모두 관곽을 썼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홀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9 沈同 以其私問曰 燕可伐與잇가 孟子曰 可하니라 子噲 與人燕이며 子之 受燕於子噲 有仕於此어든 而子悅之하여 不告於王而私與之吾子之祿爵이어든 夫士也 亦無王命而私受之於子 則可乎 何以異於是리오 <孟子, 公孫丑下>  
심동(沈同)이 그 개인적으로 물었다. “연나라를 정벌해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됩니다. 〈연나라 왕인〉 자쾌(子噲)도 남에게 연(燕)나라를 줄 수 없으며, 〈재상인〉 자지(子之)도 자쾌에게 연나라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벼슬하는 자가 있다면 그대가 그를 좋아하여 왕에게 고하지 않고 사사로이 그에게 그대의 녹봉과 작위를 주고, 저 선비가 또한 임금의 명령이 없는데도 사사로이 그대에게 녹봉과 작위를 받는다면 괜찮겠습니까? 어떤 것이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10 龍子曰 治地 莫善於助 莫不善於貢이라하니 貢者 校數歲之中하여 以爲常하나니 樂歲 粒米狼戾하여 多取之而不爲虐이라도 則寡取之하고 凶年 糞其田而不足이라도 則必取盈焉하나니 爲民父母하여 使民盻盻然將終歲勤動하여 以養其父母하고 又稱貸而益之하여 使老稚 轉乎溝壑이면 惡在其爲民父母也리오 <孟子, 滕文公上>  
용자(龍子)가 말하길 ‘토지를 관리하는 것은 조법(助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貢法)보다 좋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공법은 몇 해의 중간을 비교해서 기준을 삼는 것인데, 풍년에는 쌀알이 어지러이 널려서 조세를 많이 취하더라도 학정이 아닌데도 조세를 조금 취하고, 흉년엔 그 밭에 거름을 주기에 부족한데도 꼭 조세를 가득 취하니,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으로 하여금 눈을 흘기며 장차 해를 다하도록 부지런히 움직여도 세금 때문에 제 부모를 봉양할 수 없고, 또 빚을 내서 세금에 보태서 늙은이와 어린이로 하여금 도랑과 산골짜기에서 구르게 한다면, 그 백성의 부모 된 도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11 以不得舜으로 爲己憂하시고禹皐陶 爲己憂하시니 夫以百畝之不易 爲己憂者 農夫也니라 <孟子, 滕文公上>  
요(堯)임금은 순(舜)을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고, 순임금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네. 무릇 100묘의 농지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자기 근심으로 삼는 자는 농부라네.
12 堯舜 旣沒하시니 聖人之道衰하여 暴君 代作하여 壞宮室以爲汙池하여 民無所安息하며 棄田以爲園囿하여 使民衣食하고 邪說暴行 又作하여 園囿汙池沛澤多而禽獸至하니 及紂之身하여 天下又大亂하니라 <孟子, 滕文公下>  
요임금과 순임금이 죽은 뒤에 성인의 도가 쇠하자, 폭군이 대대로 나와서 집을 부수어서 연못을 만드니 백성이 편안하게 쉴 곳이 없어졌으며, 농토를 없애서 동산을 만드니 백성에게 옷과 음식을 얻지 못하게 하였네.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위가 다시 일어나고 동산과 연못과 늪이 많아져서 금수가 이르렀으니, 주왕의 몸에 미쳐서는 천하가 또 크게 어지러워졌네.
13 吾爲此懼하여 閑先聖之道하여 距楊墨하며 放淫辭하여 邪說者케하노니 作於其心하여 害於其事하며 作於其事하여 害於其政하나니 聖人 復起사도 不易吾言矣시리라 <孟子, 滕文公下>  
나는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대 성인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적을 막으며 방탕한 말을 쫓아내어 바르지 않은 학설이 나올 수없게 하니, 제 마음에서 일어나서 해야 할 일에 해가 되며 해야 할 일에서 일어나서 그 정사를 해를 끼치니, 성인이 다시 나와도 나의 말을 바꾸지 못할 것이네.
14 孟子曰 爲政 不難하니 罪於巨室이니 巨室之所慕 一國 慕之하고 一國之所慕 天下慕之하나니 沛然德敎 溢乎四海하나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정치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큰 가문에게 죄를 얻지 않는 것이다. 큰 가문이 사모하는 것 그것을 온 나라가 사모하고, 온 나라가 사모하는 것 그것을 천하가 사모하니, 그러므로 성대한 덕의 교화가 천하에 넘친다.”
15 萬章曰 舜之不告而娶 則吾旣得聞命矣어니와 帝之妻舜而不告 何也잇고 曰 帝亦知告焉이면妻也시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순(舜)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서 장가든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얻어들었지만 요(堯)임금이 〈딸을〉 순에게 시집 보내고서 고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요임금 또한 그들에게 고했다면 시집 보낼 수 없음을 알았다네.”
16 咸丘蒙 問曰 語云 盛德之士而臣하며而子 南面而立이어시늘 堯帥諸侯하여 北面而朝之하시고 瞽瞍亦北面而朝之어늘 見瞽瞍하시고 其容 有蹙이라하여늘 孔子曰 於斯時也 天下殆哉岌岌乎인저하시니 不識케이다 此語 誠然乎哉잇가 孟子曰 否 此非君子之言이라 齊東野人之語也 堯老而舜攝也러시니 堯典曰 二十有八載 放勳 乃徂落커시늘 百姓 如喪考妣三年하고 四海 遏密八音이라하며 孔子曰 天無二日이요 民無二王이라하시니 旣爲天子矣 又帥天下諸侯하여 以爲堯三年喪이면 二天子矣니라 <孟子, 萬章上>  
함구몽이 물어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길, ‘성대한 덕의 선비는 임금이 얻어서 신하로 삼을 수 없으며, 아버지도 〈그를〉 얻어 아들로 삼을 수 없다. 순임금이 남쪽을 마주하고 서 있었는데, 요임금이 제후들을 이끌고 북쪽을 마주하여 그를 조회하였고, 고수 또한 북쪽을 마주하여 그를 조회하자 순임금이 고수를 보고서 순의 얼굴에 찡그림이 있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길, ‘이때에 세상이 위태로웠도다. 급급하도다’ 하였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이 정말로 그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이는 군자의 말이 아니다. 제나라 동쪽 야인의 말이다. 요임금이 늙어 순임금이 섭정한 것이니, 《요전》에 이르길, ‘〈섭정한 지〉 이십 하고 또 팔 년 만에 방훈이 마침내 죽자, 백성이 부모의 상과 같이 삼 년을 지냈고, 온 세상이 음악 〈연주를〉 그쳤다’ 하였고, 공자가 말하길, ‘하늘에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왕이 없다’ 하시니, 순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고, 또 천하의 제후를 이끌어서 요임금의 삼년상을 행했다면, 이는 두 명의 천자인 것이네.
17 屋廬子悅이어늘 或問之한대 屋廬子曰 季子 之鄒 儲子 得之平陸일새니라 <孟子, 告子下>  
옥려자가 기뻐하자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옥려자가 말하였다. “계자는 추 땅에 갈 수 없었고 저자는 평륙에 갈 수 있었습니다.”
18 孟子曰 古之賢王 好善而忘勢하더니 古之賢士 何獨不然이리오 樂其道而忘人之勢 王公 不致敬盡禮亟見之하니 見且猶 而況得而臣之乎 <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의 어진 왕들이 선을 좋아하여 〈자기〉 세력을 잊었는데 옛날의 어진 선비들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도를 즐거워하고 남의 세력을 잊었다. 그러므로 왕과 공이라도 공경을 다하고 예를 다하지 않으면 어진 선비를 자주 만날 수 없었으니 만나는 것도 오히려 자주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얻어서 어진 선비를 신하로 삼는 것에서야?”
19 有官守者 其職則去하고 有言責者 其言則去니라 <小學, 明倫第二>  
지킬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분을 할 수 없으면 떠나고, 말할 책임이 있는 자는 그 말을 할 수 없으면 떠나간다.
20 樂記曰 豢豕爲酒 非以爲禍也언마는 而獄訟益繁 則酒之流生禍也 是故 先王 因爲酒禮하사 一獻之禮 賓主百拜하여 終日飮酒하되醉焉하니 此先王之所以備酒禍也시니라 <小學, 敬身第三>  
악기에 말하였다. 돼지를 길러 잡고 술을 만드는 것이 그것으로 화를 만듦이 아니지마는 옥송이 더욱 많아짐은 술의 유폐가 화를 낳아서이다. 이런 까닭으로 선왕이 인하여 주례를 만들어서 한번 (술을) 올리는 예에 손님과 주인이 백 번 절하여, 날을 마치도록 술을 마시면서도 취할 수 없게 하였다. 이는 선왕이 이로써 술의 화에 대비한 것이다.
21 明道程先生曰 憂子弟之輕俊者 只敎以經學念書 令作文字니라 子弟凡百玩好皆奪志하나니 至於書札하여는 於儒者事 最近이언마는이나 一向好著이면 亦自喪志니라 <小學, 嘉言第五>  
명도 정 선생이 말하였다. “자식과 아우의 가볍고 뛰어남을 근심하는 사람은 오직 경서의 학문과 책을 읽는 것으로 가르치고, 문자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식과 아우의 모든 여러 가지 완상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뜻을 빼앗으니, 글씨와 편지에 이르러선 유학을 배우는 사람의 일에 매우 가깝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좋아하면 (어조사) 또한 스스로 뜻을 잃는다.”
22 効伯高이라도 猶爲謹勅之士 所謂刻鵠不成이라도 尙類鶩者也어니와 効季良이면 陷爲天下輕薄子 所謂畫虎不成이면 反類狗者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용백고를 본받다가 될 수 없어도 오히려 삼가고 조심하는 선비는 될 것이니, 이른바 ‘고니를 새기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래도 오리를 닮는다’는 것이다. 두계량을 본받다가 되지 못하면 천하의 가볍고 박한 사람이 되는데 빠질 것이니,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를 닮는다.’는 것이다.”
23 男子無故어든 不入中門하며 婦人 輒至男子喪次니라 <小學, 嘉言第五>  
남자가 까닭이 없으면 중문에 들어가지 않으며, 부인이 갑자기 남자가 상을 치르며 머무는 곳에 이를 수 없다.
24 甫十歲 祈寒暑雨라도 侍立終日하여 不命之坐어든 不敢坐也하니라 日必冠帶하여 以見長者하며 平居 雖甚熱이라도 在父母長者之側하여 去巾襪縛袴하여 衣服唯謹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겨우 열 살에 큰 추위와 더위가 있고, 비가 내리더라도 종일 (부모를) 모시고 서 있을 때 앉으라고 명하지 않으면 감히 앉지 않았다. 날마다 반드시 관을 쓰고 띠를 매어 (그 모습으로) 써 장자를 뵈었으며, 평소에 비록 매우 덥더라도 부모와 장자의 곁에 있으면 두건과 버선과 행전을 벗지 않고 의복을 오직 삼갔다.
25 海虞令何子平 母喪 去官하고 哀毁踰禮하여 每哭踊 頓絶方蘇하니라 屬大明末 東土饑荒하고 繼以師旅하니 八年 營葬하여 晝夜號哭하되 常如袒括之日하여 冬不衣絮하고 夏不就淸凉하며 一日 以米數合으로 爲粥하고 不進鹽菜하니라 所居屋敗하여 不蔽風日이어늘 兄子伯興 欲爲葺理한대 子平 不肯曰 我情事 未申하니 天地一罪人耳 屋何宜覆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해우령 하자평은 어머니상에 관직을 버리고 슬퍼하며 (몸을) 해치는 것이 예를 넘어서 매번 울고 뛰고, 갑자기 기절했다가 겨우 깨어나곤 하였다. 마침 명나라 말기에 동쪽 지역에 흉년이 들고 전쟁이 이어져 여덟 해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울부짖어 항상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는 날과 같이하였으며, 겨울에는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나아가지 않았다. 하루에 쌀 몇 홉으로 죽을 만들고, 소금이나 채소도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지내는 바의 집이 무너져 바람이나 해도 가리지 못하자 형의 아들인 백홍이 (그를) 위하여 수리하고자 했으나 자평이 달가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내 감정이 펴지지 못하고 있으니 천지의 한 죄인일 뿐이다. 집을 어찌 마땅히 덮겠는가?”
26 汲黯 景帝時 爲太子洗馬하여 以嚴見憚이러니 武帝卽位하여 召爲主爵都尉러니 以數直諫으로 久居位하니라 是時 太后弟武安侯田蚡 爲丞相이라 中二千石 拜謁이어든 弗爲禮하더니 見分 未嘗拜하고 揖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급암이 경제의 때에 태자세마가 되어 엄격함으로 꺼려졌는데, 무제가 즉위하자 (급암을) 불러서 주작도위로 삼았는데, 자주 직간하여 오래 벼슬자리에 있지 못했다. 이때 태후의 아우 무안군 전분이 승상이 되었는데, 2천 석을 받는 관원이 절하고 알현하면 전분이 답례하지 않았다. (그러나) 급암이 전분을 만남에 일찍이 절을 하지 않고, (그에게) 읍만을 하였다.
27 嗟哉董生이여 朝出耕하고 夜歸讀古人書로다 盡日하여 或山而樵하며 或水而漁로다 入廚具甘旨하고 上堂問起居하니 父母不慼慼하며 妻子不咨咨로다 <小學, 善行第六>  
아! 동생이여! 아침에 나가 밭갈고, 밤이면 돌아와 고인의 책을 읽도다. 날을 다하도록 쉬지 못하여 혹 산에서 나무하며, 혹 물에서 고기잡도다. 부엌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당에 올라 안부를 물으니, 부모는 근심스러워하지 않고, 처자는 원망하지 않도다.
28 太祖幸其第하여 謂曰 卿不食肉하면 有二失이라 不保其身하여 終養其母하니 不孝也 不永命하여 使予早喪良弼하니 不忠也 <[新編]明心寶鑑, 韓國篇>  
태조가 그의 집에 행차하여 일러 말하였다. 그대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 두 가지 잘못이 있게 된다. 그 몸을 보전하지 못하여 끝까지 그 어머니를 봉양할 수 없으니 불효이고, 목숨을 오래 살게 하지 못하여 나로 하여금 일찍 훌륭하게 보필하는 자를 잃게 하니 불충이로다.
29 時祭則散齊四日하고 致齊三日하며 忌祭則散齊二日하고 致齊一日하며 參禮則齊宿一日이니 所謂散齊者 不弔喪 不問疾 不茹葷 飮酒至亂하며 凡凶穢之事 皆不得預 所謂致齊者 不聽樂 不出入하고 專心想念所祭之人하여 思其居處하며 思其笑語하며 思其所樂하며 思其所嗜之謂也 夫然後 當祭之時하여 如見其形하고 如聞其聲하여 誠至而神享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시제는 4일간 산재를 하고 3일간 치재를 하며, 기제에는 2일간 산재를 하고 1일간 치재를 하며, 참례에는 1일간 재숙을 한다. 산재라는 것은 (남의) 초상을 조문하지 않으며, 병에 걸린 사람을 문병하지 않으며, 훈채를 먹지 않고, 술을 마셔서 취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안 되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모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으며 출입하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 제사를 받는 사람을 생각하여 그가 거처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웃고 말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좋아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즐기던 것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무릇 그렇게 한 뒤에야, 제사 지내는 때에 이르러 그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그의 소리를 듣는 듯하여 정성이 지극하여 신이 흠향하는 것이다.
30 鷄肋: 修字德祖이며 好學하고 有俊才하며 爲丞相曹操主簿하여 用事曹氏 及操自平漢中하여 欲因討劉備하고 欲守之 又難爲功이라 護軍不知進止何依 <原文故事成語, 努力>  
31 袴下之辱: 淮陰侯韓信者 淮陰人也 始爲布衣時 貧無行하여 推擇爲吏 又不能治生商賈하여 常從人寄食飮하니 人多厭之者 常數從其下鄕南昌亭長寄食한대 數月 亭長妻患之하여 乃晨炊蓐食하고 食時信往 不爲具食이라 信亦知其意하고 怒竟絶去 <原文故事成語, 慾心>  
32 太祖晩年 有豐沛之戀하여 禪位世子하고 行北闕하여 不肯回鑾이라 朝廷每請奉還이나 而不得請이라 前後使者十輩인대이라 此所謂咸興差使也 <原文故事成語, 才致>  
33 三人成虎: 龐葱 與太子質於邯鄲할새 謂魏王曰 今一人言市有虎 王信之乎아하니 王曰 否라하다 二人言市有虎 王信之乎아하니 王曰 寡人疑之矣라하다 三人言市有虎 王信之乎아하니 王曰 寡人信之矣라하다 龐葱曰 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니이다 今邯鄲去大梁也遠於市하고 而議臣者過於三人矣 願王察之矣하소서하니 王曰 寡人自爲知라하다 於是辭行한대 而讒言先至 後太子罷質이나이라 <原文故事成語, 信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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